[연극 맛있게 먹기] 연극의 한류

입력 2012-04-26 14:09:01

'넌버벌' 세계화 가능성 입증…전문제작 시스템 필요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물질적 풍요를 강조하던 시대가 정신적 풍요를 강조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라고 말한다. 특히, 아시아에서 시작해 세계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 한류 열풍은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역량과 입지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이며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가 21세기 문화예술의 시대에 빨리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류 열풍의 주체가 TV 드라마나, 아이돌 가수들의 가요 등 몇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 문화예술이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여러 사례를 통해 검증되고 있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외국에서 들어온 문화예술의 형식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한국적 특성을 담은 새로운 문화예술로 거듭나기도 한다. 이는 연극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원래 연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재 한국의 연극은 서구에서 들어온 연극 형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번역극이 한국에서 공연되는 연극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이 그리 머지않은 과거의 일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또한 연극 유학을 다녀온 전문가들조차 대부분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한 이들이다. 물론 독일을 비롯한 유럽 기타 국가나 일본이나 중국에서 유학한 이들도 있다. 어쨌든 아직까지 우리는 서구의 연극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는 TV 드라마나 K팝이라고 불리는 한국 가요도 원래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예술 형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것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처럼 연극이라는 기초예술 분야도 오래된 서구의 형식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특성을 담은 우리의 문화예술로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한류 열풍의 중심에는 TV 드라마와 K팝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계의 유명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영화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자국의 영화시장을 지키고 있는 그리 많지 않은 나라에 우리나라가 들어간다는 사실은 분명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또한 몇몇 한국 영화는 오히려 미국에서 리메이크할 정도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한국 영화에 비한다면 한국 연극은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연극이 원래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니어서는 아니다. 서구에서 유입된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는 문화예술 형식처럼 연극도 그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난타' '점프' 'B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넌버벌' 공연은 한국에서 제작한 연극의 세계화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연극이 영세한 극단 시스템을 벗어나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얼마든지 세계를 상대로 한 상업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한류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극에서는 영화나 TV 드라마, 아이돌 가수 등을 키워가는 기획자나 제작자 혹은 시스템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연극이 그만큼의 상업성을 지니고 있지 못한 예술이라는 이유와 그만큼의 팬들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이 영화나 TV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획이나 홍보를 비롯한 전문 제작 시스템이 약한 이유는 결국 상업성에서 비롯되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전문 제작 시스템이 약하기 때문에 상업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기획력과 홍보력을 갖춘 우수한 인력은 영화나 TV 쪽으로만 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배우나 작가, 연출 등을 비롯한 연극의 핵심 인력 등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연극이 예술성을 강조하는 기초예술 분야의 영역에서 한 단계 도약해 연극 종사자 누구나 최소한의 생계 유지가 가능한 상업성을 확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선 기획, 홍보 등의 시스템을 교육하고 그러한 능력을 갖춘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연극은 배우, 작가, 연출 등의 핵심 인력 없이는 제작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관객이 없다면 앞선 작업은 모두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기획이나 홍보 등의 전문인력은 매우 중요하다. 연극에 영화나 TV 등의 전문적인 기획홍보 시스템이 개발되어 적용된다면 분명히 지금보다는 조금 더 밝은 미래가 열리게 될 것이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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