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탈세

입력 2012-04-26 11:04:58

은행원들 사이에는 겉모습을 보고 고객을 판단하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다. 행색이 초라해 보이는 고객이 의외의 큰손일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고객을 성심껏 대했더니 거액을 예금하더라는 성공담이 금융업계에서는 심심찮게 전해진다. 이처럼 모든 부자들이 좋은 옷을 입고 비싼 음식을 사먹으며 고급 차를 모는 것은 아니다. 부를 맘껏 과시하는 부자들도 많지만 검소하게 지내며 가진 티를 내지 않는 부자들도 적지 않다.

부자 같아 보이지 않는 부자 중에는 자수성가형 부자들이 많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젊었을 때 한푼 두푼 아껴가며 성공한 부자들은 대체로 모은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데다 몸에 밴 소박한 생활 방식도 버리지 않는다. 부를 힘들게 축적하다 보니 자린고비형 생활 습관을 고수하거나 돈을 써야 할 때는 쓰더라도 평상시에는 찌개 백반 등을 사먹으며 서민처럼 살아간다.

부자 티를 내지 않는 데에는 부의 노출을 꺼리는 심리도 작용한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자식이나 친지 등이 손 벌리기 쉽고 사기나 강도 등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으므로 부자 행세를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다. 거액의 토지 보상금을 탄 벼락부자들이 오래 지나지 않아 부의 규모가 순식간에 줄어드는 것은 부자란 사실이 알려진 탓이 크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부자들은 불안하고 외로우며 상속 갈등 등의 문제에 휘말리기도 한다.

합법적인 돈을 관리하기도 쉽지 않은데 불법적인 돈을 지키는 것은 얼마나 힘들까. 서울 강남의 잘나가는 의사들이 탈세를 목적으로 거액의 현금을 숨기다 적발됐다. 5만 원권 현금 다발로 24억 원을 집 옷장 등에 숨기거나 비밀 창고를 만들어 114억 원을 보관하다 국세청의 세금 추적망에 걸렸다. 빼돌린 돈의 규모도 엄청나지만, 돈을 은닉한 방법 역시 세인들의 입을 벌리게 한다.

그 돈을 보관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불안감의 강도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서류를 조작하고 숨기는 장소를 궁리하는 등 안간힘을 다했을 테고 누가 돈을 훔쳐가지는 않을지, 탈세 사실이 알려지진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전전긍긍했을 게다. 결과적으로 탈세범으로 손가락질받는 불명예와 탈루 세금을 추징받게 된 현실에 괴로워하겠지만 지난 시간의 불안감은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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