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강, 희망의 강] (9) 칠곡, 평화로 흐르는 강

입력 2012-04-26 07:47:18

전쟁의 상처도, 순교의 눈물도, 강은 기억한다

한국전쟁 당시 왜관지구 303고지였던 자고산(303m) 정상에는 한미전몰장병추모비가 있다. 추모비 뒤로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칠곡 낙동강 일대(약목면 관호리, 동안리, 복성리)가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왜관지구 303고지였던 자고산(303m) 정상에는 한미전몰장병추모비가 있다. 추모비 뒤로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칠곡 낙동강 일대(약목면 관호리, 동안리, 복성리)가 보인다.
임진왜란을 겪은 후 전략적 요충지인 가산(902m)에는 가산산성(가산면 가산리)이 들어섰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한 축이기도 했다. 복원된 가산산성 진남문을 등산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임진왜란을 겪은 후 전략적 요충지인 가산(902m)에는 가산산성(가산면 가산리)이 들어섰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한 축이기도 했다. 복원된 가산산성 진남문을 등산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1981년 문을 연 다부동전적기념관(가산면 다부리)에는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전쟁의 아픈 역사를 되새긴다. 이곳 유학산(839m)을 중심으로 남과 북은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1981년 문을 연 다부동전적기념관(가산면 다부리)에는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전쟁의 아픈 역사를 되새긴다. 이곳 유학산(839m)을 중심으로 남과 북은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담고 있는 가실성당(왜관읍 낙산리). 대구경북지역에서 계산성당 다음으로 들어섰다.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담고 있는 가실성당(왜관읍 낙산리). 대구경북지역에서 계산성당 다음으로 들어섰다.

칠곡군은 시련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예로부터 낙동강 교역의 최대 거점이었던 칠곡은 한국전쟁 최고의 격전지였다. 물밀듯 내려온 북한군에 맞서 국군은 칠곡 낙동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결국 칠곡 낙동강에서의 승리로 전세는 뒤바뀌었다. 칠곡에는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은 아픔도 서려 있다. 백성들은 새로운 종교로 새 세상을 꿈꿨고, 이를 용납할 수 없던 왕조는 참혹한 처형으로 잃어가던 권위를 세우려 했다. 칠곡군은 전쟁과 순교의 아픈 역사를 평화로 승화시키려고 한다. 현재 호국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있고, 내년에는 낙동강 세계평화축전을 연다. 순교 성지는 평화를 일깨우는 관광지로 꾸미고 있다.

◆낙동강의 눈물, 한국전쟁

칠곡 낙동강은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쟁터였다. 이를 증명하는 상징물들이 칠곡에는 많다.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폭파했던 호국의 다리(옛 왜관철교'왜관읍 석전리∼약목면 관호리)는 전쟁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50년 7월 말 물밀듯이 밀려오는 북한국에 대응해 국군과 유엔군은 왜관지역 낙동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저지선을 구축했다. 왜관을 잃을 경우 대구가 북한군 야포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고 이는 곧 부산까지 밀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8월 16일 북한군 4만여 명이 왜관 건너편 낙동강 일대에 집결해 대규모 도하작전을 펼쳤다. 일본에서 이륙한 미군 B29폭격기 98대가 왜관 서북방 지역에 포탄 960t을 퍼부었다. 북한군 4만여 명 가운데 3만여 명이 숨졌다. 북한군의 병참 보급기지이자 사령부가 있던 약목역(약목면 복성리) 일대는 잿더미가 됐다.

왜관지구 303고지였던 자고산(303m) 역시 전쟁의 기억을 담고 있다. 낙동강을 건너온 북한군과 교전했던 303고지에는 미군 포로 40명이 북한군에게 집단 학살된 상처를 지니고 있다. 정부는 1978년 낙동강이 보이는 자고산 기슭에 왜관지구전적기념관(석적읍 중지리)을 세웠다.

낙동강 전선 가운데 치열했던 또 다른 전장이 가산면 다부리다. 이곳 유학산(839m)을 중심으로 남과 북은 1950년 8월 초부터 55일간 격렬한 전투를 이어갔다. 북한군 2만4천여 명, 국군 1만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허위범 다부동전적기념관 소장은 "칠곡 일대에서의 승리로 국군은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며 "이를 기리기 위해 1981년 다부동전적기념관 문을 열었는데, 현재 전적비와 충혼비, 전투기, 전차, 대공포 등을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해와 순교의 슬픈 역사

칠곡은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바친 순교 성지다. 낙동강 옆 가실성당(왜관읍 낙산리)은 그 역사를 말해준다. 1895년 빠이아스 가밀로(한국명 하경조) 신부는 낙동강 물길을 이용해 대구, 안동, 부산을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에 가실성당을 세웠다. 대구경북에선 계산성당 다음이었다. 당시 낙산리 일대는 가실'강창나루터가 있던 교역의 중심지였다. 1923년에 지은 현재의 성당 건물은 북한군이 병원으로 사용하면서 전쟁의 참화를 비켜갈 수 있었다.

가실성당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에 '신나무골 성지'(지천면 연화리)가 있다. 임진왜란 때 피란지였던 이곳은 천주교 신자들이 1815년 을해박해를 피해 모여 살기 시작했다. 1882년 영호남 지방 선교에 지대한 역할을 한 로베르(한국명 김보록) 신부가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1860년 경신박해 때 한티에서 아들 배도령(스테파노)과 함께 순교한 이선이(엘리사벳)의 묘가 있다.

한티마을(동명면 득명리) 또한 순교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1815년과 1827년 박해 이후 대구 감옥에 갇힌 신자 가족들이 한티마을에 모여 살았다. 이들은 옹기와 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이어갔다. 신나무골을 오가며 신앙생활도 계속했다. 1866년부터 3년간 이어진 모진 박해로 수십 명의 신자들이 한자리에서 몰살을 당하는 비극을 겪게 됐다. 30여 기의 무명 순교자 무덤이 한티에 흩어져 있다.

박세문 칠곡군 전략기획과 경영개발담당은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칠곡의 순교 성지를 찾아와 그 옛날 순교자들의 길을 따라 걷는다"며 "군은 주변을 정비해 이들의 발걸음을 돕고, 순교의 아픔을 통해 평화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은 평화를 싣고

칠곡군은 전쟁과 박해의 역사를 지닌 낙동강을 '평화의 강'으로 탈바꿈시키려고 한다. 전쟁이 남긴 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을 개발하려는 것. 그 첫 걸음이 낙동강 호국평화공원(석적읍 중지리)이다. 2014년까지 525억원을 들여 왜관지구전적기념관 일대에 들어설 공원은 추모와 교육, 체험이 조화를 이뤄 평화의 참의미를 전해줄 공간으로 만들어진다. 왜관철교 건너기, 철책'땅굴 체험, 4D영상 호국교육관 등 다양하게 구성한다. 자고산에 호국 둘레길을 내고 303고지에 한미 우정의 공원도 만든다.

군은 무엇보다 내년 9월 호국평화공원과 낙동강 일대에서 펼칠 '낙공강 세계평화축전'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군은 해외 사례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미국 뉴욕에는 2001년 세계무역센터가 항공기 테러로 붕괴된 자리에 그라운드 제로라는 기념공원이 들어섰다. 이곳에선 매년 희생자 추모의 불빛인 '트리뷰트 인 라이츠' 행사가 열린다. 공원 조성과 지속적인 행사를 통해 테러의 끔찍함을 기억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교훈의 장이 되고 있다.

독일에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철거되지 않은 베를린 장벽이 남아있다. 해마다 기념식과 추모식, 벽화 그리기, 도미노 대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벌어진다. 유대인 학살로 악명을 떨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폴란드 제1의 관광지가 됐다.

최웅 경상북도 미래전략기획단장은 "제주 4'3 평화공원, 서대문 형무소 역사공원 등 과거 어두운 역사를 몸소 체험함으로써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관광이 주목을 받고 있다"며 "칠곡 역시 전쟁과 순교의 역사를 하나의 축제로 승화해 '평화'를 도시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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