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대구경북에선 선거를 없애자

입력 2012-04-21 08:00:00

4·11 총선 결과 수도권과 호남을 제외하고는 전국이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새누리당의 압승이다. 그 중심에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그를 추종하는 영남 지방이 있었다. 특히 대구경북에서는 단 한 석의 누수도 없다. 2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보수 세력의 '일당독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대구경북에서 이번 선거는 정책은 없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후보자들의 충성 맹세뿐인 듯했다. 지역의 선량을 뽑는 총선이 아니라 박근혜의 대통령선거 같았다. 대구경북의 후보자들은 충실한 아바타 역할을 한 것이다. 새누리당 간판이면 누구라도 당선되니 후보자의 자질은 별 상관없다. 제수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김형태 씨도 무난하게 당선됐으니 말이다. 대구경북이 중량감 있는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소외당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정치를 통해서 지역 발전을 꾀하겠다는 희망은 환상일 뿐이다. 대구경북의 염원이었던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새누리당 공약에서 빠져도 선거에는 아무 영향이 없었다.

이번 선거는 당초 민주통합당의 대약진을 예고했었다. 한나라당이 없어지고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꿔 단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였다. 경기도 군포에서 잘나가던 김부겸 의원이 대구에 온 것도 잘하면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쟁 구도를 만들어 지역 발전을 도모하자는 마음에서 지역의 지식인과 언론은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선거 기간 동안 민주당 지도부는 이 지역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대구경북이 없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거나, 대구경북을 아예 포기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이 발전하는 데 야당의 협조를 얻을 수 없는 이유를 알 만하다.

이래저래 대구경북은 정치적으로 힘을 받기 어렵게 되었다. 자체 생산력이 부족한 이 지역은 중앙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새누리당 후보자들은 중앙예산을 끌어와 지역을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구경북은 왜 자꾸 후퇴하는가. 대구경북의 정치인은 예산 따오는 것보다는 박근혜 위원장의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것만이 당선의 보증수표인데 예산 따위는 안중에 없을 것이다. 이 지역에 국회의원 한 명 없는 야당이 대구경북을 거들떠보겠는가. 이런 구조에서 대구경북은 후진하고 퇴보할 수밖에 없다. 혹자는 말한다. "그러니 박근혜를 대통령에 당선시켜야 한다"고.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하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아이에게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돌아오는 것도 없다. 보채고 싸워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세상 이치가 아니겠는가.

현재로서는 선거를 통해 대구경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번처럼 결과가 뻔한 선거를 왜 해야 할까. 미리 답을 알고 치는 시험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대구경북에서는 아예 선거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생뚱맞은 이야기를 해보자. 다음 선거 때부터는 대구경북의 경우 새누리당의 공천을 당선으로 간주하고 투표를 아예 생략하자. 그리고 지역에 아무 연고가 없는 후보자를 공천해도 당선이 확실하니 번거롭게 후보자들에게 지역구를 정해줄 필요도 없이 비례대표 명단처럼 대구경북에 할당된 27명을 공천하면 될 것이다. 대구의 경우 선거를 치르는 데 약 150억 원 정도(후보자들의 공식 선거 비용 포함)가 든다. 선거를 생략해서 남는 이 돈을 학생들 무료급식에 사용하면 훨씬 생산적이지 않을까. 아니면 회사를 설립해 일자리라도 하나 더 만들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대구경북만 선거를 치르지 않는 것이 무리라면 다음과 같은 방법도 있다. 후보자들은 정당 공천 없이 전원 무소속으로 경쟁을 하고, 당선 후에 정당을 선택하도록 하면 어떨까. 그러면 새누리당 공천의 프리미엄이 없는 상태에서 공정한 게임이 될 것이고, 싹쓸이 현상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낙하산 공천을 막아 지역에 뿌리를 내린 토종 정치인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을까. 하도 답답해서.

이성환/계명대교수, 국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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