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강, 희망의 강] (8) 구미, 역사와 첨단이 어우러진 강

입력 2012-04-19 07:36:43

인걸을 낳은 땅 역사를 품은 강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강정마을(고아읍 예강리)에 서예의 대가인 고산 황기로가 지은 매호정이 있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강정마을(고아읍 예강리)에 서예의 대가인 고산 황기로가 지은 매호정이 있다.
선산읍 원리 남산의 제1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구미보의 모습.
선산읍 원리 남산의 제1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구미보의 모습.
해평면 낙산리 낙동강 동쪽 구릉지대에 4∼6세기에 만들어진 신라시대의 고분 250여 기가 있다. 일본 관광객들이 고분군을 둘러보고 있다.
해평면 낙산리 낙동강 동쪽 구릉지대에 4∼6세기에 만들어진 신라시대의 고분 250여 기가 있다. 일본 관광객들이 고분군을 둘러보고 있다.
조선 중기 유학자인 여헌 장현광을 기리기 위해 1665년 제자들이 지은 동락서원(임수동)이 낙동강 옆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중기 유학자인 여헌 장현광을 기리기 위해 1665년 제자들이 지은 동락서원(임수동)이 낙동강 옆에 자리잡고 있다.

구미는 첨단산업도시다. 1970년대 초 정부의 수출 정책으로 대규모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됐다. 풍부한 수량이 필요한 산업단지는 낙동강을 끼고 들어섰다. 반도체, 휴대폰, LCD 등이 생산되면서 내륙 최대의 첨단 수출산업단지를 보유한 도시로 발돋움했다. 구미는 역사문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불교가 신라에 처음 전해지고 조선시대 유교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가 찾는 해평습지와 도립공원인 금오산 등 천혜의 자연을 지녔다. 구미시는 낙동강을 발판삼아 역사문화와 첨단산업이 어우러지고 일과 생활, 여가를 함께 즐기는 수변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강 따라 인물 따라

구미는 충의와 절개를 지킨 인물을 배출한 고장이다.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삼은으로 꼽히는 야은 길재(1353∼1419)가 구미 고아읍에서 태어났다. 야은은 38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후학들은 야은을 기리기 위해 1570년 금오서원(금오산)을 세웠다. 임진왜란 때 불탄 서원은 1602년 낙동강과 감천이 만나는 현재 위치(선산읍 원리)에 재건됐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손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다.

야은은 강호 김숙자를 제자로 길러냈다. 강호는 고령과 개령(김천) 현감을 지내는 동안 야은의 학문을 알리면서 성리학의 초석을 다졌다. 셋째 아들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은 강호를 이어 영남 사림의 대표인물로 성장했다. 사후인 연산군 4년(1498년)에 수양대군(세조)을 비판한 '조의제문'이 뒤늦게 빌미가 돼 문하생 33명이 죽임(무오사화)을 당했다.

선산에서 태어난 단계 하위지는 세종 때 장원급제를 했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자(계유정난) 단종 복위를 계획했다 탄로 나 성삼문, 박팽년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경은 이맹전은 계유정난 후 선산에 내려와 은둔했다. 매일 같이 단종이 귀양 간 강원도 영월을 향해 절했다.

조선 중기에는 여헌 장현광(1554∼1637)이라는 당대 최고 영남 유학자를 낳았다. 구미 인동이 본관인 여헌은 퇴계 이황의 제자인 한강 정구에게서 배운 퇴계학파의 대표인물이다. 학문 수양과 제자 양성에 몰두해 '여헌학파'라는 영남의 학맥을 형성했다. 병자호란 땐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를 모아 전장에 보냈다. 여헌을 기리기 위해 1665년 제자들은 동락서원(구미시 임수동)을 지었다.

◆역사문화의 '보물창고'

구미 낙동강 주변에는 다양한 역사문화가 꽃을 피웠다. 해평면 낙산리 낙동강 동쪽 구릉지대에 2∼6세기에 만들어진 신라시대의 고분 250여 기가 있다. 1989년 대구가톨릭대 박물관의 조사결과 선산지역의 소국(小國) 또는 그에 버금가는 집단의 지배자 무덤으로 밝혀졌다. 신라시대의 덩이쇠, 쇠도끼, 금 장신구류 등 400여 점의 각종 부장품이 발굴됐다.

구미는 신라 불교의 성지다. 신라 불교가 처음으로 뿌리를 내린 곳이 구미 선산이다. 불교가 공인(527년)되기 100여 년 전 아도라는 스님이 시종 2명과 함께 모례의 집(도개면)에 왔다. 아도는 머슴으로 일하며 밤에는 불법을 전하면서 418년에 냉산(691m) 자락에 신라 최초의 절인 도리사를 지었다.

서예의 대가인 고산 황기로가 지은 매학정(梅鶴亭'고아읍 예강리)이 낙동강변에 있다. 고산은 사위였던 옥산 이우에게 정자를 물려주었다. 율곡 이이의 동생인 옥산은 시(詩)'서(書)'화(畵)'금(琴)에 능해 사절(四絶)이라 불렸다.

충의는 사람만의 몫이 아니었다. 불이 난 길가에서 잠을 자던 주인을 위해 낙동강 물을 적셔 주인을 살리고 죽었다고 전해지는 개의 무덤인 의구총 (義狗塚'해평면 낙산리)이 있다. 호랑이로부터 주인을 구한 소의 무덤인 의우총(義牛塚'산동면 인덕리)도 남아 있다. 비슷한 전설은 여러 지방에서 들을 수 있으나 구미처럼 봉분이 남아있는 곳은 흔치 않다.

정태흥 구미시 수변도시조성 담당은 "수많은 인물들, 고대 고분, 서원, 불교 유적 등 구미 낙동강 주변에는 역사문화 자원들이 풍부하다"며 "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낙동강변을 따라 생태'문화체험, 레포츠 등을 즐기며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친수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과 생활, 여가를 즐기는 도시

구미시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말까지 낙동강 활용방안을 시민들에게 물었다. 시민들은 수변레포츠 시설이 제일 필요하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번지점프, 열기구, 테마수영장, 암벽등반코스, 레일자전거 등 시민들은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문화예술시설에 대한 요구도 컸다. 야외공연장, 수상아트홀, 미술관, 놀이공원, 아쿠아랜드 등 여러 제안이 나왔다. 생태체험이 가능한 체험학습장, 습지공원, 수목원 등 휴양공간도 원했다.

구미시는 '지속가능한 녹색 수변도시로의 도약'을 꿈꾸며 낙동강 둔치 활용방안을 내놓았다. 낙동강 둔치 전역의 읍면동별로 올해부터 2014년까지 약 10곳(250만㎡)에 '수변시민공원'을 조성한다. 공원에는 휴게쉼터, 자전거 길, 조깅코스 등을 포함해 특색 있는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선보인다. 2014년에 모습을 드러낼 선산읍 신기리 낙동강변의 수상비행장(3만㎡)에는 격납고, 탑승로, 편의시설 등이 들어선다. 양호동 산호대교 상류에는 2015년까지 마리나시설(28만㎡)과 요트 정박장, 라운지 등이 꾸며진다. 새로 조성된 생태하천에 머무를 수 있도록 오토캠핑장(지산동'20만㎡) 110동, 자가텐트 150동, 몽골텐트 50동을 수용할 예정이다.

송재일 대구경북연구원 지역관광팀장은 "구미는 근대화 과정에서 기존의 역사문화보다 산업화 위주로 도시계획이 진행돼 왔다"며 "이젠 수변공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잊고 지낸 낙동강 주변의 역사적 인물과 유적, 자연환경 등을 잘 살려 삶의 숨통을 틔워주는 여가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산업단지가 있는 도심에는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강변공원을 늘리는 한편 골목마다 오래된 맛집들 같은 이색적인 장점을 특성화해 관광자원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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