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선거와 복기(復棋)

입력 2012-04-16 10:50:45

바둑을 좀 아는 사람들은 바둑이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도(道)라고 말한다. 열아홉 줄 작은 반상에서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수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 많다 하여 '인생 축소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바둑의 유용함에 대해 일컫는 '위기오득'(圍棋五得)도 이를 뒷받침하는 말이다. 좋은 벗과 화목을 얻고, 삶의 교훈과 마음의 깨달음을 얻으며 천수를 누린다는 것이니 바둑은 예사롭게 대할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잘 두는 바둑은 제 약점을 잘 보완하고 때로는 버리며 물러서서 순응하는 강약완급의 묘수가 변화무쌍하다. 이런 전략과 심리를 잘 구사하면 승부는 절로 따라온다. 상대의 움직임에서 때와 기회를 기다릴 줄 알고 자기 조절에 능하다면 집이 늘어나고 승률은 높아지는 것이다.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제 사람을 세우는 선거도 바둑과 다를 바 없다.

4'11 총선을 반상의 돌싸움에 대비해 보면 닮은 점을 찾을 수 있다. 돌을 놓은 자리에 대해 복기(復棋)를 하듯 여야의 선거 결과 분석과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그렇다. 야권 내외부에서는 공천 실패에서 보인 리더십 부재와 여론조사 부정, 김용민 막말 등이 패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닥치고 투표'와 같은 오만과 오판 때문에 자멸했다는 뼈아픈 분석도 있다. '심판론'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 야권의 부실한 상차림과는 달리 새누리당은 먹히든 먹히지 않든 MB 정부와의 단절과 한나라당 흔적 지우기, 신뢰의 리더십이 좋은 결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복기는 패자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선거를 망친 야권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도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약점을 정확히 분석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당 현종 때 시인이자 바둑 명수였던 왕적신(王積薪)이 가르친 '위기십결'(圍棋十訣)을 곰곰이 되새겨 본다면 이번 선거는 물론 다가올 대선에서 좋은 처방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승리를 탐내면 이기지 못한다'거나 '위기에 봉착하면 버리고' '돌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잡아라'와 같은 가르침은 조금도 사리에 어긋남이 없다. 절대 지려야 질 수 없는 싸움에서 야권이 패퇴한 것은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민심을 정확히 읽는 데 실패한 때문은 아닐까. 12월 대선은 여야 모두 또 하나의 기회다. 하지만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신 것에 대한 계산서는 분명히 나온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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