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의 시와 함께] 열락 바람

입력 2012-04-12 07:50:57

도심 뒷골목에 바위 하나가 있다

그 바위를 무시로 타고 문지르던

햇살의 등덜미 피해

습한 틈새에

발 곧추세운 이끼처럼

기뻐하고 즐거워야 할 말이 있다

끈질긴 열락(悅樂)이 문드러질 때까지

모두 열락을 꿈꾸고 싶었으리라

삼키고 내달리고 윽박지르다

엉뚱하게 전달되는 말처럼

소리 나는 대로 쓰고 뱉기 바람

바르게 고쳐 읽지 않기 바람

이걸 보는 사람은 즉시

제대로 고쳐지기 전에

내내 기뻐하고 즐거워하길 바람

열락 바람의 염원으로

눈 밝은 이들에게 연락 바람

고궁 담벽 한 모서리에

제멋대로 휘갈겨 쓴 전언이 달려온다

지금부터라도 열락을 꿈꾸라며

쿡쿡 웃는 옆구리 사정없이 찔러댄다

  구순희

평범한 일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느끼게 하는 구순희 시인의 작품입니다. 이번에는 길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낙서를 하나 집어내어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고 있네요.

뒷골목의 어느 조경용 바위에 '열락 바람'이라는 낙서가 있나 봅니다. '연락 바람'이라 써야 할 것을 맞춤법을 몰라 그렇게 쓴 것이겠지요. 그 순간 '연락'은 큰 기쁨을 나타내는 '열락'으로 바뀌고, 낙서는 고귀한 메시지를 전하는 성스러운 말이 됩니다.

벚꽃이 길을 환하게 밝히는 이 봄날, 꽃이 피었다고 전하는 연락이 그야말로 '열락'이 되는 계절입니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연락이 저마다 열락이 되는 나날이면 좋겠습니다. '열락' 바랍니다.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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