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정치인이 무서워하는 사람은 유권자다

입력 2012-04-10 07:08:43

내일은 대구경북의 미래를 결정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날이다. 유권자 한 표 한 표로 지역을 대표할 국회의원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구경북 유권자들 중에는 투표할 '맛'이 안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결과가 뻔한 선거에 굳이 투표할 이유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이 지역 선거는 뚜껑이 열리기 전부터 새누리당의 '싹쓸이'가 점쳐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로 보는 지역의 판세는 새누리당의 우세가 완연하다. 새누리당은 대구경북의 27석을 모두 독식하겠다며 석권을 장담하고 있다.

문득 1년 전쯤 이맘때가 생각난다. 당시 밀양신공항 추진이 무산되면서 대구경북의 민심은 들끓었다. 내륙도시의 한계를 벗어나 '하늘길을 열자'는 지역민들의 염원은 '정부와 새누리당의 경제성 없다'는 논리에 무참히 묵살됐다.

이에 지역 정치권과 새누리당에 대한 성토 여론이 하늘을 찔렀다. 일부 지방의원들과 시민들은 삭발까지 하며 신공항 재추진을 요구했다. 신공항 추진을 호소하기 위해 상경했던 지역민들은 지역 국회의원들의 냉대 속에 쓸쓸히 발길을 돌리기도 했고 이를 지켜보던 지역민들은 공분을 느꼈다. '신공항은 철저히 경제논리에 따라야 하므로 백지화는 당연하다' '영남 사람들이 지역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는 서울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는 지역민들의 가슴을 후벼 팠다.

'텃밭'이라는 대구경북이 '호구'가 됐다는 좌절감과 TK정권을 창출했다는 자부심은 배신감으로 바뀌었고 급기야 지역민들 사이에는 '1년 뒤 총선에서 보자'는 분노가 팽배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신공항이 백지화된 지 불과, 1년 만에 하늘을 찌를 듯 분노했던 지역 민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신공항의 유치를 기원한 수천 개의 플래카드는 총선 후보자들의 플래카드로 대체됐고 언제 신공항 유치 운동이 펼쳐졌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진다. 마치 대구경북이 '거대한 망각의 늪'에 빠진 듯하다. 공천 당시 풍차 돌리기식 공천, 낙하산 공천 등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론이 잠시 일기도 했으나 역시 망각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대신, '새누리당 막대기만 꽂으면 된다'는 '묻지마 투표'병이 만연하고 있다. 뒤늦은 공천으로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지역에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 새누리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고, 후보등록을 하지 않은 후보가 선두를 기록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다. 지역에 기여를 했든 말든, 애정과 능력이 있든 말든 새누리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상황에서 지역을 위해 노력하고 의지를 가지고 현안 해결에 발벗고 나설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의 민심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선거운동기간에도 새누리당 후보들을 보기 힘든다. 선거가 끝나면 또다시 4년 후에나 공천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유권자들의 푸념이 벌써부터 들린다. 이는 고스란히 대구경북의 불행을 낳았고 앞으로도 이 같은 불행을 연장시킬 것이 뻔하다.

이제 지역 유권자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투표는 정책이든 인물이든 정당이든 대상이 뭐가 됐건 그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다. 결국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을 '업수이' 보는 중앙정부, 중앙정치인, 중앙 언론들과 싸우려면 지역을 대변해서 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꼼꼼히 생각을 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해서 기권하거나 무조건적인 묻지마 투표는 지역의 불행을 연장시키는 행위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유권자를 진정으로 무서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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