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사이코소매틱스

입력 2012-04-09 07:55:33

옛날 우리 선조들은 통속적으로 질병을 크게 급살병, 고질병, 돌림병, 화병 등으로 나눠 불렀다. 그래서 돌아가신 이유, 즉 사망원인도 사고로 다친 경우가 아니라면 그중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옛날의 병들은 요즘으로 치면 급성, 만성, 전염성 질환으로 바꿔 부를 수 있겠는데 마지막의 '화병'이 흥미롭다.

'화병'이란 화가 나서 마음이 상한 것 때문에 몸에 병이 왔다는 것인데 현대의학에도 그런 개념이 있다. 심신증(心身症)으로 번역되는 사이코소매틱스(psychosomatics)가 바로 그것인데 마음의 질병이 몸의 질병으로 이어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면접 전에 괜히 배가 아프다든지 하는 가벼운 경우에서부터 협심증과 고혈압, 부정맥, 십이지장 궤양, 불임, 당뇨, 심지어 암의 발병에까지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략 정신이 신경계와 내분비계(호르몬), 면역계 등에 미치는 영향 때문으로 짐작한다.

최근에 이러한 짐작을 더욱 뒷받침하는 연구 발표가 있었다. 배우자와의 사별 등으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으면 면역체계가 약화될 수 있다고 영국 버밍엄 대학의 재닛 로드 박사가 실험결과를 밝혔다.

면역체계란 것이 세균이나 암세포와 싸우는 우리 몸의 자기방어체계인 만큼 쉽게 말해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폐렴이나 암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노인의 경우 오래 함께 살아온 배우자를 잃고 얼마 안 있어 자신도 사망하는 일이 종종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화병으로 죽는다는 조상들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아니다.

서양에서도 사이코소매틱스의 개념은 지구상 가장 오래된 수천 년 전 인도로부터 전해져 오는 고대의학인 아유르베다의 원리에도 있다고 한다. 또한 구체적인 가장 오랜 것으로는 기원전 300년경 히포크라테스가 상상임신에 대한 열두 명의 여성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사이코소매틱스'라는 용어는 근대에 와서야 1818년 독일의 하인로드에 의해 처음으로 정립됐다.

그러고 보면 우리 옛 속담에 나오는 '웃는 집안에 복이 깃든다'(笑門萬福來), '한번 웃으면 그만큼 더 젊어지고, 한번 화내면 그만큼 더 늙는다'(一笑一少, 一怒一老), '한 번 웃는 것이 천금 같다'(一笑千金)는 얘기가 의학적으로는 정확한 표현이고, 건강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실천 방안이 되겠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가짐만으로도 병을 예방할 수 있다면 개인은 물론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국가적으로도 커다란 이익이다. 마음에도 건강검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요즘, 때맞추어 나온 반가운 소식이 있다. 내년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검진을 시행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힘찬 환영의 박수를 보낸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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