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맛있게 먹기] 연극성과 문학성

입력 2012-04-05 14:07:36

보이는 재미만 좇지 말고 작품 내면에도 관심 가져야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다. 물론 상연을 전제로 하지 않는 '레제드라마'도 있다. 하지만 희곡은 연극으로 공연이 되어 관객과 함께 숨 쉴 때 비로소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본다. 읽는 사람이 아무리 탁월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해도 레제드라마는 결국 '독서용 연극'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그런 작품이 공연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작 그대로 상연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각색 등 수정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렇게 되면 무대 상연을 목적으로 하는 연극의 각본이라는 희곡의 사전적 의미에서 조금 벗어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극작가는 모름지기 무대화를 생각하며 작품을 써야 한다. 무대를 생각하지 않은 작품은 쓸데없이 독백이 많아지거나 관념적으로 흐르기 쉽다. 이런 실수는 초보 극작가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독백 중심의 작품은 주인공의 심리를 치밀하게 드러내려는 일종의 의도일 수 있다. 하지만 무대를 크게 의식하지 않은 미숙함을 드러내는 것도 사실이다. 실생활에서 독백이 거의 존재하지 않듯, 연극 내에서의 독백도 사실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지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연극에서는 가급적 독백을 삼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초보적인 규칙을 깨뜨릴 만한 필연을 만들지 못하고 독백으로 연극을 이끌어간 작품은 일단 극작술의 미숙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무대를 떠올리며 한 번이라도 더 무대화 작업에 신경을 쓰며 쓴 작품은 기본적인 세팅이라고 할 수 있는 무대 공간의 설정부터 달라진다. 무대화를 생각하며 공간을 설정하고 그 안에 인물을 집어넣기 때문에 지루하거나 억지스런 독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물의 갈등을 살리기 쉽다. 또한 각종 무대장치의 사용을 통해 볼거리까지 다채롭게 만든다면 더욱 풍성한 연극이 될 것이다.

극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희곡의 틀을 뚫고 나와 무대에서 관객과 직접 만날 때 보다 큰 창작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따라서 극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활자 매체를 통하여 독서의 대상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대에서 관객과 직접 만나 호흡하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희곡은 연극 공연을 위한 각본이기 전에 시, 소설처럼 문학의 한 장르이다 보니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는 특성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만약, 희곡이 지니고 있는 두 가지 특성을 문학성과 연극성이라고 본다면 극작가는 문학성과 연극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해야 하는 곡예사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어 제대로 서지 못하면 독자와 관객 모두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연극성이 부족한 작품에 대해 문학성은 뛰어나니 훌륭한 작품이라고 변명할 수는 없는 것처럼 튼튼한 연극성만으로 허약한 문학성을 보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즉, 문학성과 연극성 양자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훌륭한 희곡작품이 될 수 있으며 극작가는 언제나 그런 작품을 쓰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이는 희곡의 기원이나 특성상 타당한 이야기이다. 각종 희곡론과 연극론 서적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희곡은 연극에 그 발생기원을 두고 있고, 연극은 원시시대 인간의 제사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연극은 인간과 오랜 친구이며, 연극과 절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희곡 또한 인간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인간과는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연극과 희곡은 인간 삶의 진실을 열정적이고도 치밀하게 보여주는 예술이다. 이 때문에 연극적인 삶은 가식이나 거짓이 아니라 인간들의 삶,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진실한 삶인 것이다. 즉, 연극이란 건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단면을 통해 우리들 삶의 진실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며 희곡은 그러한 연극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희곡과 연극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또한 한 편의 작품이 지니고 있어야 할 문학성과 연극성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관객은 겉으로 보이는 연극의 재미에만 치우쳐 열광하지 말고 연극 내면의 재미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희곡에는 연극성이 필요하고 연극에는 문학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와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이미 문학성을 인정받은 세계적인 소설을 각색해 무대화한 작품이다. 이는 두 작품이 문학적으로는 훌륭하다 하더라도 무대화를 전제로 쓴 희곡이 아니기 때문에 각색을 통해 연극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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