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메기를 찾자

입력 2012-04-05 11:04:30

조선 유학의 태두 퇴계 이황은 제자는 물론 나이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학자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허심탄회한 심정으로 나라 걱정을 하고 학문도 논했다. '퇴계선생문집'에는 그렇게 주고받은 편지 3천200여 통이 수록돼 있다. 서른다섯이나 어린 대학자 율곡 이이와도 예외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5통의 편지가 문집 속에 남아 오늘에 전하고 있다. 그 편지 가운데 1567년 서른둘의 젊은 율곡이 예순일곱의 대선배 퇴계에게 털어놓은 답답한 심정이 400년이나 지난 지금, 우리 가슴에 와 닿는다.

"국가가 고질에 빠진 지 20여 년이 되었으나 상하가 모두 인습에 젖어 조금도 고치지 못하여 현재 백성의 힘이 이미 고갈되고 국가의 재정이 이미 바닥났습니다. 만약 개혁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장차 나라답지 못할 것이니 조정에 벼슬하는 인사들이 어찌 장막 위 제비(幕燕)와 다름이 있겠습니까. 한밤중에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일어나 앉게 됩니다. 저처럼 미천한 사람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명공(明公)께서는 삼조(三朝'중종 인종 명종)에 은혜를 입었고 벼슬이 육경(六卿)에 오르고서 이에 걱정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율곡은 속내를 전하며 "삼가 바라건대 이 편지는 불태워버리고 남의 눈에 띄게 하지 않는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라며 정중한 부탁으로 글을 맺고 있다. 조선 건국 200년간의 평화를 누리면서 부패와 기강 해이로 나라가 어지럽고 위태로워 국가 녹을 먹고 있는 벼슬아치가 장막 위 제비처럼 불안한 지경이라는 한탄이다. 그렇지만 개혁도 안 되고 어찌 해볼 수 없는 나라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심정을 원로 학자 퇴계에게라도 몰래 털어놓아야만 했을 정도로 답답했던 모양이다.

총선이 엿새 남았다. 지역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얼마 전 대구경북 지식인 500명과 대구 개신교 4개 단체 소속 종교인이 총선을 앞두고 간절히 호소했다. 지역의 독점적인 정치 구조를 깨자고. 절박함이 묻어나는 간곡한 호소였다. 이례적이었다. 속이 터지고 답답했을 것이다. 독점 구조에 갇힌 지역 정치를 걱정하는 속내가 율곡의 걱정과 무엇이 다르랴. 다만 걱정의 대상이 율곡은 '나라'였고, 오늘 저들에겐 '대구경북'일 뿐이다. 특히 20년 넘는 특정 정당 독식의 정치 구조가 남긴 심각한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그러할 것이다. 지역엔 정치 독점이 고착화되면서 경쟁과 긴장은 사라졌다. 무사안일만 횡행했다. 비전과 리더십도 실종됐다. 새 피 수혈은 더욱 난망이다. 기초'광역 지방의원부터 기초'광역 지방자치단체장에 국회의원까지 한 정당이 싹쓸이하는 기괴한 정치 편향의 결과다. 돌은 굴러야 이끼가 끼지 않는다. 물은 흘러야 썩지 않는다. 우린 너무 오랫동안 구르지도, 흐르지도 않았다. 그렇게 허송했다.

옛날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영국 런던까지 싱싱하게 공급하기 위해 메기를 넣었다. 청어를 잡아먹으려는 메기. 잡아먹히지 않으려 달아나야 하는 청어의 운명. 생명을 담보로 한 줄다리기다. 정치도 같으리라. 지금껏 대구경북엔 메기 정치인은 없었다. 청어만 넘쳤다.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인근 부산과 광주에서 부는 바람에도 우린 요지부동이다. 각종 총선 여론조사를 보면 엿새 앞으로 다가온 이번 총선 결과는 뻔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의 실망으로 끝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뀜 직한 2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정치 독식은 계속되고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변화의 새싹을 틔우기엔 이 땅은 여전히 척박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을 따름이다. 부산에선 조경태 민주통합당 후보가 유일한 야당 의원으로 3선을 노린다. 지지 여론도 견고한 듯하다. 과거 여당 일색 정치 판도에서 외로웠겠지만 고군분투 재선 활동이 그만큼 훌륭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야당 텃밭인 광주에선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돌풍이다. 유일한 초선 여당 의원으로 광주에서 메기 이상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증거이리라. 그간 우린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는 정치 편식이 지역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웠다. 이젠 제대로 사람 보고 뽑을 때가 됐다. 청어도 메기도 필요하다. 적어도 지역의 미래를 걱정하고 다음 세대엔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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