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전인 1986년 4월 26일 옛 소련의 우크라이나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역사상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났다.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유출됐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일대의 자연은 황폐화된 채 남아 있고, 사람들은 후유증으로 각종 질병과 암에 시달리고 있다. 원전 주변에 살던 11만6천여 명의 주민들은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원전의 역사가 막을 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갔다. '망각의 힘'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원전 산업은 제자리걸음을 하다 몇 년 전부터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세계 원전업계는 '원전 르네상스'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지난해 3월 11일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다시 한 번 원전의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리히터 규모 9의 지진이 일본을 뒤흔들었고, 쓰나미가 광범한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거대한 파도 이후에 핵 재앙이 잇따랐다. 방사능에 노출된 땅과 채소, 나무 등 모든 것이 오염됐다. 원전 선진국인 일본에서 일어난 사고인 탓에 충격적이었다.
고장과 사고는 원전의 숙명인 듯하다. 국내에서도 크고 작은 원전 고장 사고와 가동중단 사태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부산 고리원전 1호기가 12분간 모든 전원이 끊기는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켰다. 설계수명을 5년이나 넘긴 고리 1호기에서는 그동안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졌다. 특히 정전 사고를 은폐하는 일까지 벌어져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 기장군 장안읍 주민들은 고리 1호기 폐쇄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구경북지역은 원전 고장과 사고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오는 6월 준공을 앞둔 경주 신월성 1호기가 지난달 27일 냉각재 펌프 정지사고를 일으켰다. 지난 2월에도 발전 정지사고로 시험운행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경북에는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 21기 중 10기가 있으며, 울진과 경주에 각각 2기의 원전이 건설되고 있다. 영덕은 지난해 12월 신규 원전 후보지로 선정됐다. 경주에는 중저준위 방폐장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처럼 경북에는 '원자력 혐오시설'이 가득한 셈이다. 원전과 방폐장은 경북 동해안에 있는 반면 연구와 교육시설 등은 서울과 대전 등에 몰려 있다. 수도권은 원자력이나 화력발전소가 없으면서도 한국 전체 전력의 38%를 소비하고 있으며, 연구기관과 병원 등 대부분의 원전 인프라를 갖고 있다. 원자력발전은 발전소를 건설하고,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환경문제를 일으켰다. 한국이 전기 걱정 없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원전지역 주민들의 양보와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원전의 안전성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원전 추가건설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의 수명 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단기간에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며 원전 추가건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70년 전인 1942년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는 세계 최초의 원자로를 만들었다. 인류는 획기적이고 엄청난 에너지를 얻게 됐다. 현재의 에너지 기술로는 원전을 대체할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원전정책 재검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원전을 당장 그만두자고 주장하기 어려운 이유다.
정부와 원전업계는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폐쇄성을 버리고 정직성과 투명성을 보여줘야 한다. 원전 반대자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와 막연한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기를 값싸고 편하게 쓰기 위해 원자력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위협과 사회적 비용을 외면했던 의식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망각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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