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당들의 국회의원 후보들이 결정되었다.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들에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여럿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잘 안다. 과학과 기술이 경제 발전에 중요하다는 것도, 뛰어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많아야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는 것도. 그러나 과학과 기술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관심은 크지 않고, 정부의 정책들은 기업들의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격려하기보다는 억제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당연히,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의 사회적 지위는 점점 낮아진다.
이런 사정은 대학 학과들의 인기도에 정확하게 반영된다. 우리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을 때, 자연과학과 기술을 배우는 학과들은 인기가 높았고 우수한 학생들이 지망했다. 요즈음 자연대나 공대엔 우수한 학생들이 좀처럼 가지 않는다. 대신 성적이 좋은 이과 고등학생들은 모두 의대를 지망한다. 심지어 공대에서 기술자가 될 공부를 한 뒤에 의학을 공부하는 젊은이들도 상당히 많다. 이런 사정은 상당한 사회적 손실을 뜻한다.
의학은 물론 중요한 학문이지만, 그런 편중은 건강하지 않다. 학교 성적이 좋다고, 의사로서의 적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좋은 과학자나 기술자가 될 수 있었던 젊은이들이 모두 의사가 된 것이 사회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거나 복지를 늘리는 것도 아니다.
실은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술자들이 많고 뛰어나야, 제조업이 발전해서 경제를 튼튼하게 한다. 19세기에 '세계의 공장'이었던 영국에서 공업은 20세기에 차츰 쇠퇴했다. 그런 쇠퇴 과정에서 고급 기술자들이 줄어들었다. 지금 영국은 고급 기술자들의 부족으로, 제조업을 부흥시키려는 야심 찬 계획을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 우리 발명가들과 창업자들은 너무 어려운 환경에서 일한다. 애써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면, 다른 기업들이 이내 그것을 불법으로 베끼는데,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다. 창업했다 한번 실패하면, 평생 빚더미에 눌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이학과 공학에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보다 우리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것도 드물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푸대접의 건너편엔 정부 일자리들에 대한 선망이 자리 잡았다. 관리가 되어 신분의 안정을 꾀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보니, 그런 선택에 도움이 되는 법대가 문과에선 인기가 단연 높고 뛰어난 젊은이들이 몰린다.
원래 사회가 원숙해지면, 정부의 몸집이 점점 커지고 정부의 권한도 따라서 커진다. 자연히, 관리들의 권한도 커지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진다. 정부가 부여하는 자격증들을 생업의 발판으로 삼는 직업들도 인기가 높다.
이런 편중은 걱정스럽다. 법학은 창조성이나 진취성이 비교적 작은 학문에 속한다. 사람들이 가장 선망해서 늘 입에 올리는 직업은 '판검사'인데, 그들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과거지향적이다. 과거의 사건들을 법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은 무척 중요하지만, 인류와 사회의 앞날을 전망하고 사회를 이끄는 기능을 법관들에게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회는 법률가들이 실질적으로 장악해 왔다.
안타깝게도, 각종 정부 고시들에 대한 젊은이들의 열망은 오랜 역사를 지녔고 우리 전통문화에 깊이 배어 있다. 과거를 통해서 관리를 뽑는 제도는 통일 신라에서 시작되어 고려 초기에 정착되었다. 과거 제도는 부모의 신분만으로 자식들의 신분과 벼슬이 결정되는 제도보다는 훨씬 합리적 제도였다. 그러나 오래 시행되자, 과거의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양반 계급은 오로지 과거 준비에 매달리고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았다. 자연히, 조선 사회는 더할 나위 없이 정체되고 생산성이 낮고 가난한 사회로 전락했다.
그런 문화는 일본의 식민지가 된 뒤에도 이어져서,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해서 식민 통치 기구에 종사하는 것이 출세의 상징이었다. 천년 넘게 이어진 정부 일자리들에 대한 선호 문화는 지금도 그대로 살아서 우리 젊은이들을 덜 생산적인 정부 부문에 종사하도록 만든다.
이번에 새누리당이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잘 인식하고 비례대표에 여럿 포함시킨 것은 큰 뜻을 지닌다. 과학과 기술에 소양을 지닌 의원들이 국회의 풍토를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만들기를 기대해본다.
복거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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