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江의 변신… 만남의 터전에서 관광의 중심으로
예천은 강이 모이는 고장이다. 안동에서 흘러온 낙동강은 삼강(三江)에서 내성천과 금천을 받아들인다. 강이 만나는 삼강에는 서울로 향하던 선비, 보부상, 뱃사공, 나루터 인부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또 거쳐 갔다. 이들이 쉬었던 삼강주막은 현재까지 남아있다. 내성천 물줄기가 휘감아 도는 물돌이 마을인 회룡포가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답고 기묘한 풍광을 지닌 삼강주막과 회룡포 일대가 예천을 대표하는 문화체험 관광지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낙동강의 드라마, 삼강
예천 삼강은 수려한 경관과 극적인 이야기를 지녔다. 봉화에서 발원해 영주를 거친 내성천과 문경 주흘산에서 흘러온 금천을 낙동강이 삼강에서 끌어안는다. 물이 모이는 삼강은 낙동강 최고의 거점지역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고 물류가 끊임없이 오갔다.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본길이 삼강을 지나갔다. 낙동강을 따라 오르내리던 선비와 장사꾼들은 삼강에서 숨을 고른 뒤 문경새재를 넘어갔다. 내륙 뱃길이었던 삼강나루에는 길손, 뱃사공, 보부상으로 북적댔고, 소금과 각종 농산물이 모여들었다. 장사꾼들은 이곳에서 물물교환을 한 뒤 안동, 봉화, 영주 등 경북 북부지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특히 영남에서 서울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많은 선비들이 삼강을 거쳐 갔다. 선비들 사이에서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면 장원급제를 할 수 있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용성(72) 예천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조선시대에는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로 추풍령, 죽령, 조령(문경새재)이 있었다"며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어가면 죽을 쑤고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많은 선비들이 삼강나루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었다"고 설명했다.
삼강엔 낙동강에서 마지막까지 문을 연 주막이 남아 있다. 주막은 정보의 통로였다. 사람들은 주막에 머물며 각 지방 소식과 거래 상품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주막 뒤뜰의 회나무 주변에선 장이 벌어졌다. 배에 실려 온 소금, 쌀 등이 거래됐다. 회나무 바로 옆에는 100㎏이 넘는 '들돌'이 있다. 짐을 싣고 내리는 인부가 필요한 나루터에선 들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이 정해졌다.
삼강 일대는 삼국시대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신라는 북으로 영토를 넓혔고 고구려와 백제 역시 각각 남으로 동으로 세력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삼국은 삼강 일대에서 자주 충돌했다. 삼강을 끼고 있는 비룡산의 원산성(圓山城)이 그 흔적으로 남아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190년 백제 초고왕은 신라 서쪽 국경지대인 원산성을 공격해 신라군을 몰아냈다. 고구려 장수왕의 대를 이은 문자왕도 원산성을 공격했다.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원산성을 점령하기 위해 남하하다 아차성에서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즐기며 쉴 수 있는 '관광벨트'
'낙동강의 마지막 주막'이 있는 삼강 주변에 대규모 관광단지가 들어선다. 2015년이면 체험하면서 쉴 수 있는 다목적 체험관광지로 탈바꿈해 관광객을 맞이한다.
예천군은 풍양면 삼강리 부지(34만㎡)에 1천154억원을 들여 '녹색문화상생벨트'를 조성한다. 올해 인허가와 기반시설에 대한 설계용역을 마치고 부지를 매입할 예정이다. 내년 5월 공사에 들어가 2015년 연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상생벨트에는 전체 낙동강 유역에 자생하는 생태자원을 집대성한 전시공간이 생겨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낙동강에코센터, 강문화전시관을 통해 자연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된다.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다. 낙동강그린팜, 삼강주막체험촌, 나룻배체험장 등이 생겨 주막에서 잠을 자고 강을 따라 나룻배를 타면서 수공예품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된다. 친환경 캠핑장을 중심으로 노천카페, 전망대, 체육공원 등도 조성된다.
군은 지난해 10억원을 들여 '삼강~회룡포 강변길'을 만들었다. 자연친화 녹색길인 이 강변길은 행정안전부 평가에서 '2011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사업 전국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낙동강과 내성천을 10㎞가량 휘돌아 가는 강변길은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고 기존의 길과 시설물을 활용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경상북도도 올해 8월까지 56억원을 들여 삼강주막과 회룡포 전망대를 잇는 비룡교(길이 280m, 폭 5m)를 건립하고 있다. 다리가 완성되면 삼강주막과 회룡포의 산책로가 이어져 두 지역이 하나의 관광벨트로 연결된다.
◆다시 찾고 머무는 곳으로
삼강주막과 회룡포라는 지역의 유산과 경관자원을 보유한 예천은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 시의 성공을 눈여겨봐야 한다. 오타루는 옛 운하와 석조창고 등 역사 유물을 활용해 한 해 1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일본의 관광명소가 됐다.
오타루는 1887년 개항해 상업도시로 성장했다. 각종 해산물과 농산물이 집중되는 물류의 거점도시였다. 1923년 오타루 운하가 개설되면서 운하 주변에 석조창고가 들어서고 돛이 없는 작은 거룻배를 이용한 하역작업이 번성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부두 정비와 선박의 대형화로 거룻배는 점점 사라졌다. 지방정부가 운하를 매립해 항만도로를 만들면서 석조창고가 철거되기 시작했다. 1973년 지역 주민들은 '오타루 운하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고 운하와 주변 건축물 보존 운동을 벌였다. 이후 운하와 석조창고, 근대 건축물이 지역의 자산으로 재평가됐다.
지방정부는 계획을 수정해 매립하지 않은 운하의 경관을 정비했다. 또 경관 조례를 제정하는 등 석조창고가 늘어선 운하 주변을 '특별 경관 형성 지구'로 지정했다. 석조창고는 레스토랑 등 복합 소비공간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영화 '러브 레터'의 무대이자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오타루는 일본의 대표적 관광도시로 성장했다.
예천은 옛 건축물을 낭만적인 관광자원으로 재생한 오타루의 성공을 배우는 한편 경북 북부권이라는 큰 틀에서 관광 경쟁력을 되돌아봐야 한다.
송재일 대구경북연구원 지역관광팀장은 "예천은 경유지 성격을 지녔다. 여행객들은 문경, 안동, 영주를 묶어 예천을 다녀간다"며 "예천을 거쳐 간다는 건 곧 누구나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 때문에 경북 북부 전체의 관광 흐름 속에서 예천만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삼강마을과 회룡포 같은 경관자원에 더해 예천만의 특성을 발굴해야 한다"며 "밤하늘의 별을 감상할 수 있는 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 4계절 살아있는 곤충을 만날 수 있는 산업곤충연구소, 양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진호국제양궁장 등 자원을 연계해 체험관광의 재미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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