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 (제2부)] 2. 역사도시 히바

입력 2012-03-21 07:22:46

화려한 장식의 미너렛 오르니 지평선 아래 천년고도가 한눈에…

이국 땅의 역사현장을 탐방하는 것은 언제나 신비롭고 경이로운 체험이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탐방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아침을 맞으면서 시작됐다. 지난밤 늦게 숙소에 도착한 탓에 잠시 눈 붙이고 새벽부터 출발을 서둘렀다. 오늘의 목적지인 고대도시 히바는 이 나라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750㎞나 떨어진 곳이라 우즈베키스탄 항공 국내선을 이용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황토색 사막 위를 날아 약 1시간40분 만에 히바 부근 우르겐치 공항에 내렸다.

많은 역사를 간직한 히바는 고대 페르시아 시대부터 카라쿰 사막의 출입구 노릇을 해왔다. 그 옛날 통상을 목적으로 낙타를 타고 여행하는 상인 무리를 카라반 또는 대상(隊商)이라 불렀다. 이들의 마지막 휴식지로 높은 성벽을 쌓아 보호구역을 만든 이 도시는 오아시스이면서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역도시였다. 항상 맑은 물이 샘솟는 우물이 많았던 것도 이 도시의 메리트였다.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번성을 누리기도 했지만 숱한 외침에 시달려온 히바는 이중의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내성인 '이찬칼라'와 외성인 '디샨칼라'로 구성되어 있다. 투르크어로 '이찬'은 내부나 안쪽을, '칼라'는 도시란 뜻으로 '이찬칼라'는 '안쪽도시' 내성이란 말이다. 외성 '디샨'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현지인들도 잘 모른다. 외성과 내성 사이에는 일반주민들이 살고 있다. 성벽의 높이는 7, 8m이고 전체길이는 약 2㎞에 달한다. 햇빛에 말린 흙벽돌을 재료로 쌓아올린 성벽에는 30m 간격으로 둥근 탑을 설치해 망루와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있다. 26만㎡의 면적을 가진 내성에는 사방 네 개의 성문이 있다. 관광객들은 서문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왕의 궁전, 할렘, 사원 등을 관람할 수 있다. 내성 안에는 흙벽돌로 지은 작은 집들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나 있다. 유물만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더러 사람들도 살고 있다. 이곳에는 20개의 모스크(사원), 20개의 마드라사(신학교), 6개의 미너렛(첨탑)을 비롯한 13개의 박물관에 포함된 수많은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1969년에 박물관 도시로 지정되고 1990년에는 도시 전체를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내성에 들어서자 벽돌담을 따라 많은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다. 그 옛날 활기찬 소그드 상인들의 후예답게 상품진열도 아기자기하게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들여다볼 장소들이 너무 많아 바쁘게 움직이지만 사실은 여유 있게 천천히 음미하며 봐야 할 역사의 현장들이다. 일단 도시 전체를 봐야겠기에 높은 미너렛에 올라가기로 했다. 높이 57m로 히바에서 가장 높은 원추형 첨탑인 호자 미너렛으로 갔다. 이 시설은 히바에서 가장 최신 건물인데 약 백 년 전에 지어진 이슬람 호자 마드라사의 부속 첨탑이다. 청색과 녹색의 타일을 띠처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디자인에 의해 실제보다 더욱 높게 보여 히바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이 건물의 명칭인 이슬람 호자는 히바 최후의 칸을 보필한 개혁파 신하의 이름이다.

입장료를 내자 영수증도 없이 그냥 올라가란다. 조명시설이 없어 캄캄한데 경사 60~70도의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폭도 50cm 정도여서 내려오는 사람과 만나면 교행이 안 돼 그 자리에서 껴안고 돌아야 한다.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의 머리가 엉덩이에 자꾸 부닥치니 숨을 헐떡이며 오르고 또 올랐다. 우리네 삶도 그렇듯이 처음엔 힘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정상에 도착하니 갑자기 밝아지며 히바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행 끝에 깨달음의 경지가 이런 것인가. 사방으로 전망 창이 뚫려 있는 꼭대기 부분의 공간은 10명 정도만 들어설 수 있을 만치 좁은 공간이었다. 다행히 날씨가 청명하여 멀리 사막의 지평선까지 훤히 보인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천 년을 이어 살고 있는 인간들은 저곳에서 지지고 볶고 아웅다웅 다투며 삶을 영위해 오고 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조상대대로 행복과 기쁨도 느끼며 살아온 고대도시, 높은 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우리네 삶은 늘 뭔가를 생각했지만 그 깊이도 얄팍하기 그지없었던 것 같다. 일상적인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청소하는 여성이 빗자루를 들고 올라와 이제 그만 돌아가란다. 정상에 섰으니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 지친 다리를 잘 보듬어 내려갈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 문득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는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글'사진: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