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그래요. 학원에 다니지 않고 공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 학원에 다니지 않고 공부 잘하는 것은 '독종'이라고.'(EBS 지식채널e의 '공부하는 아이' 자막 중에서)
2006년, 논술 광풍이 불었다. 교육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정부와 언론이 결합하여 광풍을 주도했다. 교육은 광풍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소리 없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더불어 걸어가는 지난한 길의 연속이다. 교육에 있어서의 광풍은 한국 교육만이 지닌 슬픈 풍경이다.
특정한 정책에 의해 광풍이 일어나는 특이한 경우도 있지만, 정책의 뒤를 따라다니는 언론과 사교육 시장이 광풍을 조장한다. 거기에 학부모들의 비정상적인 교육열,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학교 교육의 느긋함이 모두 광풍의 원인이기도 하다. 광풍이 일어나면 반드시 부작용이 뒤따른다. 광풍의 대상이 창의성이든, 인성이든, 성적이든 교육 현장에 광풍이 일어나면 교육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는 저만치 멀어진다.
언젠가 우연히 바라본 초등학교 4학년 교실의 풍경. 교실 뒤 게시판에 '존중, 책임, 협동, 사랑, 감사, 용기'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교실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교육의 본질이 모두 담겨 있다. 하지만 '성적'이라는 단어가 나타나면 모두가 뒤로 밀린다. 그것이 현실이다. 아이도, 학부모도 '성적' 앞에는 무력하다. 바로 그 부분에 사교육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만들어진다.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공부를 잘하는 것이 '독종'이 되는 쓸쓸한 시대.
'EBS 지식채널e'에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영상이 있다. 거기에는 초등학생 10명 중 9명이 과외를 받고, 과외 종목은 평균 3.13개이며, 하루 평균 과외시간이 2시간 36분, 5시간 이상이 58%가 넘는다는 현실이 나온다. 10명 중 7명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으며 그 이유는 이미 다 배운 내용을 공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황당했다. 강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한번은 수업 중에 아이들이 갸우뚱한 표정을 짓는 거예요. 그러더니 왜 그렇게 어렵게 가르쳐 주세요? 그냥 공식만 알려주세요'라고 하더란다.
가출 충동을 느껴본 학생이 53.3%, 자살 욕구를 경험한 아이가 27%나 되었다. 늘 100점을 맞지 못해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목소리에 가슴이 아팠다. 결국 초등학생이 성적문제 때문에 자살하는 영상이 나온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이러한 무한질주를 멈출 수 있을까?
초등학교를 영상에 나온 것처럼 그렇게 보내고 좋은 성적으로 국제중학교에 입학하고 특목고를 나와 서울대에 들어가고 미국 유학을 다녀오는 30살의 젊은이를 인천공항에서 인터뷰했다고 하자. "당신, 행복했느냐?"고.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 나름대로 긍정적인 삶을 살았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을 게다. 앞으로만, 위로만 걸어온 그를 기다리는 미래는 여전히 불안할 것이며, 특히 30년 가까운 시간을 고스란히 빼앗겨버린 자화상에 대해 안타깝게 대답할 것이다.
'성적'은 중요하다. 하지만 '성적'은 소위 '존중, 책임, 협동, 사랑, 감사, 용기' 등과 관련된 교육과 함께 가야 한다. 방법은 오히려 단순하다. 평가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인식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평가의 과정과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 나아가 인재의 의미도 달라졌다. 미래의 인재는 단순히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유형으로, 또는 무형으로 흘러다니는 무한한 지식 중에서 의미 있는 지식을 선택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지식으로 만들면서 통합하고 창조하는 사람이 미래 인재다. 인재를 만드는 것이 교육의 현실적인 목표라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현 시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 대답은 가까이에 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할 시간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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