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의료관광 현주소] <1>태국·싱가포르

입력 2012-03-20 07:35:41

호텔같은 병원·다양한 언어 서비스…비자부터 숙박·관광까지 무한책임

방콕병원의 로비는 마치 호텔처럼 쾌적하게 꾸며놓았다.
방콕병원의 로비는 마치 호텔처럼 쾌적하게 꾸며놓았다.
26개국 언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콕병원은 주요 언어권마다 분리된 로비공간과 접수대를 마련해두고 각국의 환자들을 돕고 있다.
26개국 언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콕병원은 주요 언어권마다 분리된 로비공간과 접수대를 마련해두고 각국의 환자들을 돕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태국은 민간병원의 절반가량이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자 정부가 발 벗고 나섰다. 의료관광을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한 것. 선진국 수준의 의료서비스는 기본이고 의료관광을 왔다면 공항에서도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불필요한 규제는 거의 없앴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관광위원회'를 통해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15년이 흐른 지금 이들 국가는 연간 조 단위의 의료관광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펴낸 '한국 의료관광 총람 2012'에 따르면 세계 의료관광시장은 올해 1천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은 신흥 의료관광지로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동남아 의료관광 선진국들은 한국에 대해 노골적으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동남아 의료관광의 현주소를 방콕과 싱가포르 병원을 통해 들여다봤다.

◆지난해 태국 의료관광객 200만 명

태국 방콕 도심에 있는 방콕병원은 26개 병원을 거느린 병원그룹의 대표 주자다. 매년 15만~25만 명의 외국인 환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흔히 태국 의료관광의 메카로 꼽는 방콕 중심가 범룽랏병원은 한 해 외국인 환자 40만명가량을 유치한다. 물론 몇 해 전 기준이고, 태국 의료관광객이 2010년 156만 명에서 지난해 200만 명까지 치솟았음을 감안하면 이들 병원의 외국인 환자도 그만큼 늘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의료관광객은 8만여 명에서 11만 명으로 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들 병원 모두 한국을 경계하며 구체적인 데이터 공개를 꺼렸다. 심지어 범룽랏병원은 외국, 특히 한국 시찰단의 방문 자체를 거부했다.

외국인 환자의 숫자나 지명도에선 범룽랏병원이 방콕병원을 앞선다. 의료관광의 선발주자인 덕분에 그만큼 일찍 알려졌고, 세계적 병원인증마크인 'JCI' 등을 비롯해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은 탓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그러나 첨단 수술이나 영상의학에선 방콕병원을 한 수 위로 친다. 로봇수술기구인 다빈치를 비롯해 PET-CT, 첨단 방사선 치료기인 노발리스, 뇌종양 수술에 쓰이는 감마나이프, 256채널 CT 등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장비나 의료진의 실력 면에서 한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런 점은 태국이나 싱가포르의 의료진도 모두 인정하고 한 수 접어준다.

◆한 병원에서 26개국 언어 서비스

그럼에도 이곳에 외국인 환자가 몰리는 까닭은 관광도시 방콕이라는 특성과 함께 병원의 적극적인 마케팅 덕분이다. 방콕병원 한국인 코디네이터 김혜경 씨는 "방콕병원에서만 26개 언어 서비스가 가능하며 이 중 12개국 언어 담당자는 병원에 상주한다"며 "즉각적인 언어 서비스가 안 되는 환자는 곧바로 화상전화를 통해 안내를 받도록 조치한다"고 말했다.

호텔 로비가 무색할 정도로 꾸며놓은 산뜻한 병원 로비는 기본. 언어권별로 접수대가 구분돼 있고, 특히 아랍권 환자들을 위해 남녀 기도실과 별도 주문형 식단까지 갖춰놓았다. 흩어진 병동 사이를 오갈 때 더운 날씨에 환자들이 바깥에 나가는 불편이 없도록 건물마다 2층을 밀폐형 통로로 연결했다. 별도 의료비자도 필요없고 비자면제협정 대상국 외 국가에서 온 환자의 경우 공항에서 비자를 발급해준다. 출입국관리국 직원이 매주 주요 병원을 방문해 비자 연장도 도와주고 있다.

태국의 외국인 환자는 2006년 기준 140만 명이고, 벌어들인 돈만 360억바트(1조3천300억원)에 이른다. 외국인 환자가 의료서비스 및 관광에 지불한 돈은 2008년 580억~650억바트(2조1천400억~2조4천억원)다. 이는 태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0.4%를 차지하는 수치다. 태국의 외국인 환자 출신 국가도 일본, 미국, 영국, 중동, 아세안 등지로 다양하다.

◆빼어난 접근성이 최대 강점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주요 의료관광 고객 국가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동남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늘면서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등지의 신흥 부호들도 많이 찾고 있지만 여전히 인접 국가 고객이 많다.

특이하게도 2007년 싱가포르의 의료관광객은 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7만여 명이지만 수입은 17억 싱가포르달러(1조5천100억원)로 오히려 많다. 이는 싱가포르의 의료수가가 태국보다 훨씬 높은데다 심장 및 신경외과, 인공관절, 간 이식 등 보다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의료서비스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의료비는 한국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외국인 환자가 많은 까닭은 빼어난 접근성 덕분이다. 전체 인구 500만 명의 30%를 차지하는 외국인도 잠재 고객인 셈이다. 싱가포르 의료관광의 양대 산맥으로 마운트 엘리자베스병원과 래플즈병원을 꼽는다.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래플즈병원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박세나 씨는 "싱가포르에 있는 한국인 주재원만 2만 명을 헤아리는데 이들을 우리 병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주업무 중 하나"라며 "최근 들어 아세안 국가들의 환자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병원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호텔급이다. 로비엔 호텔처럼 고객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와주는 컨시어지가 상주하고 있다. 비자부터 숙박, 교통, 관광까지 도와준다. 의사 한 명이 하루 평균 케어하는 환자는 20명 정도. MRI나 CT를 찍으면 2시간 내에 의사를 만나 결과를 알 수 있다. 마운트 엘리자베스병원 홍보담당 아시라프 카사니 씨는 "싱가포르 내에서도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하다"며 "특히 의료비 지출을 아까워하지 않는 중국과 인도차이나반도의 신흥 부호들이 주타깃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방콕'싱가포르에서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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