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기원…공연'예술 등 인간 관련 모든 문화
최근에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란 '이야기'(story)와 '말하기'(telling)가 합쳐진 말로 '이야기 말하기', 즉 '이야기 하기'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은 단순히 '이야기 하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이자, '지식기반산업에 언어적 생명력을 고취하여 새로운 문화체계를 수립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대로부터 존재해왔던 연극과 현대의 다양한 대중매체인 영화, 애니메이션, 광고(CF), 방송, 캐릭터, 모바일, 인터넷, 예술과 공연,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교육, 마케팅 등의 '문화콘텐츠를 언어체계로서 활성화하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정보의 시대가 아니라 이야기라고 하는 서사(내러티브, narrative)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에서 서사란 연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플롯의 핵심, 즉 인과관계로 엮인 실제적'허구적인 이야기를 말한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정확한 수치나 결과를 반영하는 정보에 의한 이성이 아니라 서사라고 하는 이야기에 반응하는 감성이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은 이러한 서사시대의 가장 효과적인 '감성 유혹 장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내 타인의 감성을 움직이거나 새로운 감성의 틀을 만드는 장치, 이것이 스토리텔링의 속성인 것이다.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의 삶을 돌아보고, 나아가 삶을 재발견함으로써 다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자 고유 영역으로 이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스토리텔링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운명인 동시에 인간이 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이기도 있다. '일리아스''오디세이' 등 고대 서사시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의 이야기 장르를 이끌어가는 형식은 시대별로 항상 달랐다. 그러나 어느 시대가 됐든 관계없이 이야기는 언제나 존재했다. 이야기 자체가 사라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인간의 역사와 늘 함께해온 이야기, 그중에서도 연극은 가장 오래된 스토리텔링의 한 형식이다.
근대 이후 어느 장르도 넘볼 수 없을 만큼 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문학, 그중에서도 특히 소설은 연극에 비해 턱없이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인쇄술과 인쇄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그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문학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연극 또한 마찬가지다. 스토리텔링에서 가장 오래된 기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과 문학이 함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형식 즉 연극의 후발 주자들 때문이다.
이제는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관객 천만 명 시대를 이끈 영화, 한류 붐을 만들어 낸 방송드라마, 뛰어난 인터넷 환경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게임, 하청에서 시작했지만 급성장을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각종 축제 등 새로운 개념의 스토리텔링이 연극이라는 오래된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밀어내고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장르의 바탕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연극이 서사라고 하는 이야기의 기본에 충실한 채 깊은 맛을 내는 오래된 장맛이라면 영화로 대표되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형식은 다양한 양념이 새롭게 추가되거나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퓨전요리인 셈이다. 결국 그 선택은 개개인의 몫이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편식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은 진리에 가깝다.
'옛날 옛적에…'라며 이야기를 시작하던 우리의 할머니들이나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야기에 대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든, 듣고 싶은 것이든, 혹은 둘 모두든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들은 공연장, 텔레비전, 영화관, 거리, 자동차 등 그곳이 어디가 됐든 언제나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하며 즐긴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스토리텔링'이란 단순히 '이야기하기'가 아니라, 공연, 예술, 교육 등 좁은 의미의 문화산업을 넘어 인간과 관계된 모든 것이 문화라는 넓은 의미의 문화산업, 즉 현대의 모든 산업과 연계된 새로운 개념의 학문이자 산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연극은 그러한 개념이 발생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스토리텔링의 조상이며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스토리텔링의 미래이다. 왜냐하면 연극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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