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크(67)] 여성 3인방-(3) 트레이시 채프먼

입력 2012-03-15 13:45:26

빈곤의 악순환'소수자 대변하는 직설 화법

'델마와 루이스'라는 영화가 있었다. 평범한 주부였던 델마(지나 데이비스 분)와 반복되는 일상에 희망없이 살아가던 루이스(수잔 서랜든 분)가 우연히 여행을 떠난다. 도중 예기치 못한 범죄에 휘말리면서 도피 여행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1991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공개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미국에서 패미니즘 열풍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두 여성이 스스로 선택하는 삶의 마지막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델마와 루이스는 1980년대의 허상에 희생되었던 여성들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단 그 시대뿐만 아니었지만 레이거노믹스의 허상 속에 여성과 아동, 빈곤층의 고통은 희망없는 하루살이를 강요받고 있었다. 인구의 80%가 빈곤으로 인한 좌절을 경험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던 시대였다.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의 '패스트 카'(Fast Car)는 그런 시대를 향한 거의 유일한 비판의 목소리였다.

트레이시 채프먼은 1964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싱글맘이었던 어머니는 미국에서 흑인 여성이 현실을 인식하는 도구로 기타와 책을 선택했고 어린 트레이시 채프먼에게 선물했다. 10살이 되기 전부터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만들었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거리와 커피숍 등에서 노래하게 된다. 비록 거리에서였지만 현실을 각성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1960년대 록음악이 보여 준 저항을 1970년대 포크 음악의 정서로 표현한다.

1988년 3월, 영국 런던에 있는 돈마 웨어하우스에서는 '나탈리 머천트'가 무료 공연을 갖고 있었다. 대중과 평론가, 음악 기자들은 밴드 '10,000 매니악스'에서 솔로로 전향한 '나탈리 머천트'를 보기 위해 모였지만 오프닝 무대에 초대받은 무명의 트레이시 채프먼의 '패스트 카'에 경악한다. 노래는 당시 주류 음악계가 외면했던 현실을 담고 있다. 가출한 어머니,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편의점에서 일해야 하는 딸. 희망을 위해 향하는 대도시와 그곳에서도 이어지는 반복되는 빈곤의 삶. 패스트 카를 타고 희망을 향해 떠나지만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처럼 누구나 예측할 수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미래만 있다. 다음 달인 1988년 4월,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패스트 카'는 차트에서도 순항하며 스타탄생을 예고하지만 트레이시 채프먼은 여전히 빈곤의 악순환과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녀의 말처럼 노래는 사회의 기록이며 대중문화는 시대를 대변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 속에서 '패스트 카'를 꿈꾸는 여성이 오버랩되는 것은 불편하지만 지극히 현실이다. 하지만 이 땅의 대중문화는 온통 화려하기만 하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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