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宅은 살아있다] <11>고령 개실마을

입력 2012-03-14 07:21:40

김종직 선생 후손 집성촌…선비 전통 350년 이어 와

고령 개실마을 점필재 김종직 선생 종택. 중사랑채에는 지난해 5월 선생의 17대 종손인 김병식 씨가 타계해 전통방식으로 장례식을 치른 후 짚으로 엮어 만든 여막(廬幕)이 설치돼 있다. 여막은 전통 장례 때 상주가 탈상할 때까지 머물며 공양을 드리는 공간이다. 중사랑채 왼쪽 건물은 안채, 오른쪽 뒤편은 김종직 선생의 불천위를 모신 사당이다.
고령 개실마을 점필재 김종직 선생 종택. 중사랑채에는 지난해 5월 선생의 17대 종손인 김병식 씨가 타계해 전통방식으로 장례식을 치른 후 짚으로 엮어 만든 여막(廬幕)이 설치돼 있다. 여막은 전통 장례 때 상주가 탈상할 때까지 머물며 공양을 드리는 공간이다. 중사랑채 왼쪽 건물은 안채, 오른쪽 뒤편은 김종직 선생의 불천위를 모신 사당이다.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된 고령 개실마을 전경. 2001년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된 고령 개실마을 전경. 2001년 '마을 가꾸기 사업'에 선정된 이후 전통 체험마을 프로그램의 모범적 운영으로 방문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화개산을 배경으로 매화와 대나무 숲이 어우러진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개실마을. 꽃이 피고 골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조선 영남 사림학파의 종조(宗祖)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인 일선 김씨 6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35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김종직 선생 종택과 개실마을

김종직 선생은 문장과 경술(經術)에 뛰어나 영남학파의 종조가 됐고, 문하생으로는 정여창'김굉필'김일손'유호인'남효온 등이 있다.

김종직 선생 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62호)은 안채, 사랑채, 고방, 대문간, 사당으로 구성돼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이다. 안채는 1800년쯤 건립해 1878년에 중수됐고, 사랑채는 1812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문에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고, 그 뒤에 고방채와 중사랑채가 있다. 대청의 기둥이 모두 사각으로 되어 있지만 가운데 것만 원형으로 되어 있다.

지난해 5월 선생의 17대 종손인 김병식 씨가 타계한 후 그의 부인인 종부가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종택을 지키고 있다. 중사랑채에는 김 씨의 빈소가 모셔져 있다. 사랑채는 앞쪽에 툇마루를 둔 2칸 방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전면이 개방된 대청을, 좌측에는 앞뒤로 방과 작은 부엌을 두었다. 막돌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는데 대청의 앞쪽 기둥은 원주이다. 앞쪽이 개방된 2칸 대청 좌측에는 쪽마루를 둔 큰방과 부엌이 있고, 우측에는 툇마루가 있는 작은 방과 골방을 두었다. 중사랑채는 동향이다. 전면에는 중사랑방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대청, 우측에는 앞뒤로 온돌방과 광을 두었다. 고방채의 2칸은 광이고, 우측은 방앗간, 좌측은 마구간이었다.

마을 입구에 낡은 비석 2개가 세워져 있는 건물은 도연재(문화재 자료 111호)이다. 이 건물은 김종직 선생의 과업을 기리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건립한 강학지소다. 도연재는 현재 내부를 수리해 관광객들의 민박으로 활용하고 있다.

◆개실마을 둘러보기

개실마을 입구에는 전통 찻집 '가정다원'이 있다. 맞은편 안내 간판에는 한글과 영어, 일어, 중국어 등 10여 개 나라 글씨로 '어서 오세요'라는 뜻의 인사말이 쓰여 있다. 이 마을을 찾은 외국인 체험자들이 직접 제작해 세웠다.

전통놀이 체험마당을 위해 조성된 앞마당에는 그네와 관광객들이 쉴 수 있는 쉼터, 솟대 정원, 물레방아, 별자리 체험기 등이 있다. 마을 사무실인 개실각과 체험관 2동이 있다. 이곳에서는 엿과 한과 만들기, 전통 예절 등 개실마을의 각종 문화 체험과 식사를 할 수 있다.

체험마당 동쪽에 있는 모졸재는 민박이 가능하다. 꿩과 닭 등 가금류를 키우는 동물농장과 각종 농산물 수확 체험장이 있고, 마을 서쪽 길은 잔디밭으로 가꾼 비석 공원이 있다.

도연재 옆길로 들어가면 전통 도자기 체험장과 화산재가 있다. 도자기 체험장에서 관광객들이 직접 전통 도자기를 만들어 볼 수 있으며, 유치원과 초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맞춤형 체험이 가능하다. 화산재는 민박과 전통혼례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재실 옆 백원당은 신랑과 신부가 폐백을 드리고 첫날밤을 보내는 곳이다.

전통 한과 작업장인 마을회관, 민박집 '추우재'가 있고 모졸재와 동물농장 사이 화개산 등산로가 개설돼 있다. 등산로를 따라 600여m 올라가면 김종직 선생의 부인인 정경부인 남평 문씨와 하산 조씨 묘소가 있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화개산 십자봉 정상에 전망대가 있다. 안림천변의 쌍림면 송림리와 귀원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100m 인근의 화개산 전망대에서는 개실마을의 전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전망대를 거쳐 200m 지나면 도적굴이 있다. 남계 김수휘가 개실마을에 처음 입향한 후 "의적이 찾아와 자신들이 감추어 놓은 금화가 굴에 숨겨져 있으니 요긴하게 써 달라는 꿈을 꾸고 금화를 발견해 도적굴이라 부르게 됐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전통문화 체험 마을 인기

개실마을은 지난 2001년 '마을 가꾸기 사업'에 선정돼 흙담, 기와집, 우물 등을 고친 뒤 농촌 체험 마을 운영에 나섰다. 처음에는 주민들 대부분이 "양반 체면에 도시 사람을 상대로 밥장사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소극적인 태도와 무관심을 보였다. 방문객 수도 적은 데다 종택 개방과 음식판매 문제를 놓고 주민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부터 한과를 만들어 팔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양반이 전통 기법대로 만든 한과'로 알려지면서 유명 백화점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개실마을은 순식간에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방문객 1만명을 돌파했다.

주민들은 체험마을 운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2006년 개실마을 가꾸기 사업추진위원회를 개편해 '개실마을 영농조합법인'(대표 김병만)을 출범시켰다. 주민들은 사물놀이, 엿 만들기, 대나무 물총과 연 만들기 기술을 배우고, 벤처농업을 도입하는 등 보수적인 양반 전통을 털어내고 농촌체험마을의 성공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부의 각종 지원도 이어졌다. 2006년 문화관광부의 고택 자원화 사업에 참여해 전통한옥 11동을 고치고 한옥 방 내부에 주방과 욕실을 마련해 도시민들이 편안하게 민박할 수 있도록 했다. 2007년 경북도의 지원으로 화산재에 전통혼례관을 건립했다. 팜스테이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앞다퉈 농촌사랑지도자연수원의 기초'심화과정, 1년 과정의 농촌관광대학을 수료하는 등 각종 교육 참여와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 나섰다. 2006년 농촌마을가꾸기 경연대회에서 장려상으로 상금 3천만원을 받았고, 2007년 같은 대회에서 대상으로 받은 상금이 1억원이었다. 2010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농촌관광마을로 선정됐다. 한 해 4만5천여 명(외국인 1천여 명 포함)의 방문객이 찾아와 연간 5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성공적인 전통문화 체험마을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말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한 '제1회 대한민국 농어촌 마을대상'에서 '색깔 있는 마을' 부문 전국 최우수마을로 선정돼 대통령상과 함께 포상금 7천만원을 받았다.

개실마을영농조합법인 김병만 대표는 "양반의 예절과 역사를 가르치는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프로그램 운영이 성공 요인"이라면서 "계절마다 다른 체험 프로그램, 엿 만들기, 대나무 공예, 전통 혼례, 한옥체험 등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체험문의 054)956-4022, 011-810-5936. www.gaesil.net

고령'정창구기자 jungcg@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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