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우리에게 해적은?

입력 2012-03-12 11:09:25

'해적'(海賊) 발언으로 시끄럽다. 통합진보당 청년 비례대표 경선 후보인 20대 여성이 최근 제주도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 한 것이 발단이다. 공지영 소설가는 해군을 두고 "너희들은 해적이 맞다"고 한 술 더 떴다. 일부 누리꾼들도 가세했다는 이야기다. 그끄저께 김혁수 전 해군 제독은 눈물로 항의했다. 그제는 천안함 폭침 사고 2주년을 맞아 국립 대전현충원을 찾은 유족들이 가슴 쳤다는 보도다.

해적이 이렇게 다른가. 그러나 우린 해적에게 피해를 당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최근 소말리아 해적에게 당한 21세기의 기억도 있지만 말이다. 적어도 우리 역사 속 해적은 늘 정치 불안과 맞물려 나타난 악몽이었다. 이 해적으로 선량한 백성이 노예가 됐고, 나라까지 망쳤다. 우리 기억 속의 해적 모습은 대략 세 가지쯤이다.

먼저 당나라 해적이다. 신라 후기 왕권 다툼과 민심 이반 조짐의 혼란한 틈을 타 신라인을 노예로 판 중국 해적이다. 이는 장보고(張保皐)가 828년 흥덕왕을 만나 대책을 건의한 삼국사기에 생생히 남아 있다. "중국을 돌아보니 우리 백성들을 노예로 삼고 있습니다. 청해를 지켜 적으로 하여금 사람을 약탈해 서쪽으로 못 데려가게 해야 합니다… 왕은 장보고에게 1만 명의 군사를 주어 청해진(淸海鎭)을 설치케 했다. 그 후로 해상에서 우리 백성을 사가는 자가 없어졌다." 중국 송(宋)나라 책 '당회요'(唐會要)는 '선량한 신라인'이 당나라 사람에 의해 '늘 해적 피해(常被海賊賣)를 입어 도리상 미안한 일(於理實難)'이라 적기까지 했다.

다음 해적은 고려 멸망을 재촉한 일본 왜구다. 이 왜구도 혼란스런 왕조 후기에 극성했다. 고려사는 왜구의 침략이 1350년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고려 패망 즉 조선 개국 42년 전부터다. 안에선 원(元)'명(明) 교체기와 맞물려 친원(親元)'친명(親明)파 권력 다툼, 밖에선 왜구 노략질로 날을 지새웠다. 정몽주의 외교전과 이성계의 소탕전도 소용없었다. 1392년 고려는 망했다. 셋째 해적은 조선조의 왜구였다. 조선 왜구는 임진왜란으로 조선 백성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이는 뒷날 조선 패망의 원인(遠因)이 됐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한다. 오랜 해적 피해 역사를 굳이 떠올려보지 않더라도 우리 해군을 해적으로 일컫는 처사가 누굴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한순간 뜨기 위해, 선거 한 표 위한 것일지라도 이는 무지, 어리석음 그 자체 아닐까.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