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가격 올려놓고 동결? 주부들 시큰둥

입력 2012-03-10 08:00:00

대형마트 가격동결 허와 실

'싸다니까 사긴 하는데 진짜 싼지도 모르겠고, 장 보는 비용은 그대로고.'

주부 송인숙(43) 씨는 전단광고지를 보고 대형마트를 찾았다. 필요했던 채소와 과일들을 싸게 판다는 광고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대형마트에 간 송 씨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사려고 점 찍어둔 사과가 전단 광고 속 사진과는 달리 크기도 작고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송 씨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나 보다"며 "싸다고 홍보는 요란하게 하는데 할인 전 가격을 알 수가 없으니 얼마나 싼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형마트들이 줄지어 가격 동결과 인하를 선언하고 있다. 고공행진하는 장바구니 물가를 잡기 위해 인기 생필품의 가격을 한동안 올리지 않거나 내리겠다는 것.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장을 보기 원하는 소비자들은 당연히 가격 인하폭이 큰 물건들에 몰리고 있다. 하지만 이미 가격 인상이 된 물품들이 많아 정작 가격 동결 효과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줄줄이 이어지는 가격 동결 선언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는 지난달부터 연이어 일부 품목 가격 인하 혹은 가격 동결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시작은 이마트가 끊었다. 이마트는 지난달 29일부터 우유, 밀가루, 씨리얼 등 14개 생필품의 가격을 동결하고 해당 상품을 1년 동안 가격 인상 없이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또 커피, 고추장, 라면 등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17개 품목에 대해서는 최대 50% 가격을 인하한 후 3개월간 가격을 동결한다.

홈플러스도 '사상최대 물가잡기'라는 이름을 내걸고 반값 상품, 횡재가 상품, 착한 상품 등 다양한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전국 매장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내년 2월까지 400여 개 품목, 2천600여 개 상품의 가격을 평균 13% 인하한다는 방침이다.

롯데마트는 8일부터 50개 주요 생필품 가격을 최대 50% 할인해 6월 말까지 유지한다. 또 올해 일반 상품보다 평균 36% 가격이 저렴한 '통큰' '손큰' 상품 운영을 현재 27개에서 연말까지 100여 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국내 물가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이번 가격 동결 및 인하 결정을 하게 됐다"며 "많은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소비자는 체감효과 없다?

대형마트들은 이번 가격 동결 이벤트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기획상품으로 내놓은 일부 상품들은 내놓기가 무섭게 동이 나고 있다. 한 대형마트에서 평상시 가격보다 20%가량 싸게 판매한 딸기의 경우 점포별로 준비한 물량이 매진될 정도로 손님이 몰렸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가격 동결 정책을 펼친 이마트의 경우 가격 동결 이전보다 방문객이 5%가량 늘었다.

대형마트들이 가격을 낮추는 원리는 사전 기획이다. 3~6개월 전부터 상품을 선정해 협력회사와 사전 협상을 통해 대량매입을 해 가격을 동결시켰다. 이마트 우유의 경우 1년 판매량이 48만 개가량이지만 협력업체와의 사전기획을 통해 60만 개가량을 1년간 대량으로 예약 매입하는 방법으로 가격을 낮췄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정작 물가 안정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유와 라면, 커피, 밀가루 등 대부분 품목이 지난해 국제 곡물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미 가격이 오른 상태에서 가격 동결을 한다 해도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실제로 행사품목을 구매하는 고객들도 일방적인 대형마트의 홍보 외에는 가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품목들이 많아 할인율이 사실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대형마트에서 내놓은 100g짜리 4개가 들어간 모 업체의 비누세트는 할인 가격이 타 대형마트의 평상시 행사 가격인 2천원대 중반을 웃도는 3천700원대에 판매돼 오히려 가격을 인상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들의 경쟁적인 가격 동결 선언이 새로운 형태의 '미끼상품'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가격 동결 대상이 되는 상품들이 실질적으로 소비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물건들도 많기 때문이다. 주부 조영현(31) 씨는 "휴지나 세제 등은 평소 쓰지 않던 제품을 저렴하다는 이유로 살 수도 있지만 먹거리는 싸다고 무조건 살 수 없어서 평소에 사던 제품을 샀다"고 말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전단광고로 사람을 그러모으면 그 사람들이 할인된 딸기만 사가는 게 아니라 다른 물건도 당연히 사가기 때문에 전형적인 대형마트의 미끼상품 수법이 진화한 형태"라며 "할인되는 품목에 대한 대형마트의 마진율을 줄이는 형태가 아닌 이상 납품업체들의 부담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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