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비평문화를 '즐기려는' 자세

입력 2012-03-09 10:59:27

초등학교 시절 일기 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배워 온 '육하원칙'(六何原則)이란 게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상황을 설명하거나 글로 작성할 경우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의 여섯 가지를 이르는 말이다. 이 가운데 특히, '어떻게'와 '왜'는 본질에 대한 가치판단의 근간이 되므로 필수 불가결의 요소이며 더욱 신중하게 언급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 지역의 공연 예술을 둘러싼 관람 문화에는 육하원칙이 아니라 '오하원칙'(五何原則)만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 기초적인 제목과 일정, 내용, 출연진 등 '팩트'(fact)만 언급하는 데 그치고 나머지는 미사여구의 감상문으로 채워진다. 공연이 어떠했는지에 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평가는 '너무도 예의 바른' 우리 고장의 정서상 존재하기 어려운가 보다.

최근 들어 대구경북에도 각종 국공립 예술단체 등의 외국 현지 공연이 줄을 잇고 있다. 반가운 일이지만 간혹 해외 공연 후 현지 언론 기사와 국내 언론 기사의 상반된 보도 태도에 당혹스러울 때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별달리 애쓰거나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인터넷, SNS 등으로 나라 밖 공연 현지의 반응과 국내외 언론 보도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서는 전체 공연에 대한 내용은 물론 출연진 각각의 장단점까지 언급하며 여과 없이 냉정한 평가를 하고 있는 데 비하면 국내 언론에는 그 도시의 풍경과 공연장 시설의 스케치, 이국적 호기심에 가득 찬 관객의 인터뷰와 우리 출연진에 대한 칭찬 일색의 기사가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우리는 혼란스럽다. 정작 알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공연을 했는지, 어떻게 평가를 받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계속될는지 등이지 현지 교민들의 망향의 정을 달래주거나 국내 독자를 위한 '관광 안내' 정도로는 부족하다.

2월 대구문화재단은 2012년도 '문화예술진흥지원사업' 325건을 최종 확정, 모두 16억 8천4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중에는 '창의성과 예술성이 높은 기획으로 독창적인 예술 작품을 발굴하고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작품의 레퍼토리화를 추진'하기 위한 '집중기획사업'이 포함돼 있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 10여 편이 넘는 예술 작품이 대구를 대표할 만한 브랜드로의 가능성을 가지고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 지원작들 중 대부분은 일회성 공연으로 끝나버리고 아직 특별히 '대구산 문화예술'이라고 대표될 만한 작품은 발굴되지 못한 것 같다.

이제는 그 지원작들이 예술적 수준과 완성도를 어떻게 평가받았었는지, 지원금은 어떻게 쓰였는지,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다. 물론 이제까지 대구시나 문화재단은 평가단을 구성해 철저하게 평가했고 그다음 해 심사에도 반영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평가서는 내부용으로 쓰인 듯하고 우리는 여전히 뒷얘기로, 입소문으로, 때로는 불순해 보이는 주관적 정보로 설왕설래되고 있다.

공연 예술은 한 번 무대에 오르고 나면 사라지는 '일회성'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공연에 관한 기록이나 비평은 책임과 의무가 크고 중요하다. 또한 현장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비평을 통해 자신들의 작업에 대한 자기 점검과 반성의 기회를 가지고, 아울러 더 나은 공연을 위한 노력을 경주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 예술의 현장에는 그 어떤 분야보다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또한 공연 예술에 대한 깊은 안목과 식견을 가지고 학자적 양심과 전문가적 자존심으로 '공연의 육하원칙'을 당당히 피력하는 비평은 장벽이 없는 담론의 장에서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올 한 해도 지역 곳곳의 예술 공간에서 2012년도 문화예술진흥지원사업에 선정된 325건의 예술 활동들을 만나게 된다. 제일 먼저 예술가들의 열정과 그들이 흘린 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배려와 아량이 절실하다. 그리고 육하원칙에 따라 함께 얘기를 나누는 '즐거운 예술'에 참여하는 관객은 가장 소중하다. 필자는 대구를 대표할 문화예술 브랜드를 발굴하고 발전시키는 출발선상에 우리 모두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김아미/봉산문화회관 공연기획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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