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사는 일이 다행이다

입력 2012-03-06 07:04:09

지금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잊지 않고 써먹는 말이 있다. "야, 이렇게 맛있는 것은 처음 먹어본다."

미국 보스턴에는 문수라는 한국 절이 있는데 그곳에 주석하시는 도범 큰스님과 함께 지내면서 배운 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곳에 살면서도 필자가 직접 밥을 지어먹으며 살았다. 식탁에서 음식을 마주할 때마다 하시는 스님의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는 지나친 '립 서비스'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좀 길어지고 난 뒤에 스님의 말씀이 정말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도 똑같은 음식을 두 번 만들지 못한다. 여러 사람이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같은 순간에 음식을 만들어도 똑같은 맛을 낼 수가 없다. 그러니 먹는 순간마다 새로운 맛이요, 먹는 음식마다 세상에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인 것이다. 이러한 음식을 어찌 감사하게 먹지 않을 수 있으며, 다행하게 생각하고 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승려로 살아가지만 아직도 먹는 즐거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필자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직접 해주는 음식에 타박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다 맛있는 음식만 먹고 다닌 것도 아니요, 늘 비싸고 좋은 음식만 먹고 살아가는 것 또한 아니다. 때론 억지 춘향으로 그릇을 비워야 할 때가 적지 않게 있다. 하지만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 대한 고마움과 음식을 준비한 사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그 어떤 음식을 대하거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본다'라는 말을 잊지 않게 한다. 물론 사먹는 음식까지 그렇게 말하지는 못한다.

나에게 소중한 것과 필요 없는 것, 관심이 없는 것이 뒤섞여 세상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는 생각 중의 하나가 '내게 좋은 것이 남에게도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음식, 사상, 철학, 이념 등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러한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삶의 순간순간은 다시 올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은 소중하고 그 어떤 순간은 가벼울 수 있겠는가. 매순간이 처음 만나는 순간이고, 찰나 찰나가 새로운 찰나인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찰나가 모여진 삶의 연속을 살아가고 있음이 뼈저리게 자각되었을 때, 겨우 세상에 대한 고마움이 시작되었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수많은 것들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든 하나하나의 고임돌이 되었던 것을 알게 된 뒤에야 불만족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짓, 마음짓이 시작될 수 있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음식이 비록 나 스스로 차린 음식일지라도 다행하고 감사한 마음을 일으켜서 먹는다면, 내 생애 처음 먹어보는 음식임을 분명히 알고 먹는다면, 약이 되지 않는 음식이 어디 있겠는가. 행복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연 스님(인오선원 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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