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메주 꽃

입력 2012-03-05 07:41:23

택배 편으로 메주 한 상자가 배달되었다. 고향 마을 새막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가 보낸 메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메주를 쑬 형편이 되지 않는다. 우선 콩 삶을 커다란 솥이 없다. 가마솥은 아니더라도 큼직한 양은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 집에는 머리 뱅글뱅글 돌리는 압력밥솥밖에 없다. 콩도 국내산인지 중국산인지 헷갈린다. 메주를 만들어 매달아 놓을 시렁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해마다 고향 친구에게 부탁을 한다. 그가 직접 씨 뿌려 수확한 콩을 무쇠 가마솥에 삶아 만든 메주인지라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때 묻지 않은 그의 심성도 한몫했으리라.

허접스런 끈으로 얼기설기 묶어놓은 상자에는 고향 뒷산의 솔바람과 흙냄새도 함께 묻어 왔다. 햇볕에 그을려 시커멓게 된 친구의 얼굴이 상자 위로 내려앉는다. 메주를 좋아한다고 별명이 '메줏덩어리'인 그는 18살 비교적 어린 나이 때부터 농사를 지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아들 하나만을 쳐다보고 있는 그의 어머니 곁을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농사짓는 방법이 남들과는 달랐다. 쌀'보리농사를 주로 짓던 1970년대에 그는 과감히 참외농사에 뛰어들었다. 한겨울이면 농한기라 다들 빈둥거리며 놀 때에도 그는 비닐하우스 속에서 땀 흘리며 일을 했다. 물론 참외농사를 짓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몇 번 실패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전문 서적도 사보고 유명한 농장도 견학을 하는 등 발버둥을 쳐 가며 꾸준히 참외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몇 년 후에는 당도 높고 때깔 좋은 참외를 수확할 수 있었다. 노란 참외를 한 트럭 가득 싣고 서울 공판장에 갈 때면 그의 입에는 휘파람소리가 났었다. 소득도 짭짤했다. 도시에 나가 공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후 참한 색시를 만나 아들'딸 남매를 두었다. 지금은 자식들도 다 잘되어 있다. 맏이는 일류대학을 나와서 국내 굴지의 회사에 다니고 있고, 딸내미 또한 사범대학을 나와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상자를 풀어보니 그의 별명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긴 메주에 곰팡이가 피어 있다. 메주 꽃이다. 새하얀 솜털 같은 메주 꽃은 깊은 장맛을 내어 준다. 장맛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싱싱한 채소와 육질이 좋은 고기가 있어도 제대로 된 음식 맛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신비스런 꽃을 피우기 위하여 메주는 지난겨울 그 모진 추위에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심술쟁이 칼바람으로부터 뺨을 맞은 것은 무릇 기하(幾何)였을까? 그러나 지금은 그 모진 한파를 묵묵히 견디어낸 보람이 있어 이처럼 고마운 메주 꽃을 달고 있다.

문득 새하얗게 핀 저 메주 꽃을 보니 고향에서 참외농사를 짓고 있는 그 친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다들 농촌을 떠났지만, 묵묵히 고향을 지키며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그 친구가 깊은 장맛을 내주는 메주 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김 성 한 수필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