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불편한 진실

입력 2012-03-01 11:34:21

"우리는 살면서 많은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알고 있었던 그 진실이 모두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여러분은 어떠시겠습니까?"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이 '불편한 진실'이라는 코너를 시작하며 하는 말이다. 물론 이 제목은 환경 위기를 경고하는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가 쓴 책 제목이자, 고어가 직접 출연한 데이비스 구겐하임 감독의 다큐멘터리 제목이기도 하다. 제목만 같을 뿐 이 둘은 연관 관계가 전혀 없다. 하지만 가끔 이 프로그램을 보노라면, 유명한 제목을 베꼈든 말든, 꼭 맞는 제목이라며 무릎을 칠 때가 있다. 막상 개그맨의 풀이를 듣고 보니 원인 모르게 불편했던 것이 확 풀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인끼리 술집에서 안주를 시키는데 여성은 남성에게 먹고 싶은 것을 아무거나 시키라고 한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상황 설정이다. 이를 곧이곧대로 들은 남성이 막상 주문을 하려고 하면 여성은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반대하다 결국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시킨다. 개그맨은 이 속에 담긴 불편한 진실을 이렇게 풀이한다. '마음대로 시켜라'라는 여성의 말에는 정말로 아무것이나 시키라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정했으니, 그것을 알아맞혀 봐!'라는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개그가 인기를 끄는 것은 기발한 풀이의 묘미 때문이겠지만, 차라리 모르면 더 좋을 불편한 진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이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일어난 채선당 사건이나 국물녀 파동만 해도 그렇다. 유명 외식업체에다 상대가 임신부와 어린아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인터넷에서는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아직도 반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원인과 경과와는 무관하게 당사자는 모두 피해자가 됐다. 방송 프로그램에도 수많은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요즘 최고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인 'K-Pop 스타'를 보면, 심사 결과 극찬을 받은 참가자의 경연 화면 중간에 심사위원이 여러 차례 감탄하는 부분이 나온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잡은 화면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재미를 위해 짜깁기를 한 것인데 이를 알고 나면 마치 속은 것처럼 찝찝하다.

사실 이런 유는 당사자가 아니어서 곧 잊히거나, TV=재미라는 등식을 대입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대통령에게서도 볼 수 있다면 문제는 다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에서 국민이 느끼는 불편함의 정도가 지나치다. 지난달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측근 비리나 퇴임 뒤 사저 문제에 대한 질문에, 엉뚱하게 가락동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진솔한 사과 대신, 화가 나 가슴을 치고 밤잠을 못 잤다고 했다. 여기에는 '그 정도 일도 제대로 처리 못 하고 왜 들켰나라는 분함 때문에 가슴을 치고 잠을 설쳤다'라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정실 인사에 대해서는 미국의 예를 들며 선거 때 도와준 사람을 중용하는 것을 오히려 정당화했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예상치 못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잘 헤쳐 나왔고, 국격(國格)이 높아졌다고도 했다. 이를 개그로 풀이하면 '역사는 나를 역경을 딛고 나라를 빛낸 대통령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자화자찬 수준이다.

앞의 개그 코너는 '여러분이 가지고 계시는 불편한 진실은 과연 무엇입니까?'로 끝난다. 대통령은 남은 1년 동안 소홀함 없이 국정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다짐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국민이 가진 불편한 진실은 대통령의 이 말이 '누가 뭐라 하든 내 뜻대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읽히는 데 있다. 이는 지난 4년 동안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에서도 잘 나타난다. 취임 첫해인 2008년은 잘못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 것을 뜻하는 호질기의(護疾忌醫)였다. 2009년은 그릇된 수단으로 억지로 일을 한다는 방기곡경(旁岐曲逕), 2010년은 진실은 밝혀진다는 뜻인 장두노미(藏頭露尾), 지난해는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얕은수로 남을 속이려 한다는 엄이도종(掩耳盜鐘)이었다. 하나같이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빗댄 것이다. 거듭되는 실정에도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대통령의 태도 뒤에 숨은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직도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올해의 사자성어가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鄭知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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