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봄

입력 2012-03-01 08:00:00

"겨울도 이제는 다 지나간 것 같아요."

입춘이 지나자 만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이른 봄 인사에 바람도 조용히 따라 웃는다. 봄기운이 줄지어 서 있는 골목길에 방금 흘리고 간 동네 꼬마들의 봄 햇살 같은 웃음을 주워본다. 아직 겨울이 잠들어 있는 내 가슴에도 새봄의 하얀 실뿌리가 내리기를 기도하며 유리창 청소를 했다. 닦으면 닦을수록 맑게 열리는 창으로 하늘이 내려앉는다. 유리처럼 티 없이 맑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새삼 깨달으며 마음의 처마 끝에 종 하나를 걸어 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댕그랑댕그랑….

그 푸른 종소리에 마음을 씻는다. 때로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때로는 누군가에게 받았던 오해도 내가 살아가는데 모두가 필요한 것이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들뜬다. 이 순간만큼은 누군가를 붙들고 햇살을 가득 안은 석류나무 얘기며, 바닷가 모래밭의 조가비들 얘기며, 온 세상과 나의 마음을 동시에 물들인 저녁노을을 함께 바라보고 싶기도 했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아래층 새댁이 올라왔다. 새댁은 냉이를 한바구니 내밀었다. 우리 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지 5년이 다 되어가건만 아기 소식이 없더니 이제야 반가운 소식이 있다며 싱글벙글한다. 포르릉 날아든 새댁의 봄소식이 꽃나무가 가득한 우리 집 마당에 잔잔한 설렘을 깔아놓는다.

신혼시절, 나 또한 아이가 쉽게 들어서지 않았다. 남편은 친구들보다 결혼이 늦어 아이가 급했다. 그러나 결혼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우리 부부는 사업을 일으키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사업자금으로 빌린 빚도 갚아야 하고, 단칸방에서의 탈출도 해야 하는데 그 속사정을 모르시는 시댁 어른들은 밥값을 못한다는 핀잔을 자주 하셨다.

늘 마음속에서 초조하게 바라왔던 아이 소망이 참새처럼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오던 날, 나는 마음속에 나만의 텃밭 하나를 마련했다. 비록 서툴고 모양이 나지 않는 텃밭이지만 진솔한 얘기들을 심어 아름다운 동산을 만들고자 했다.

딸 하나, 아들 하나로 지금은 남부럽지 않지만 그 당시 첫 아이를 가졌을 때는 아들 낳는 약이 있다는 말에 솔깃했었다. 물론 그런 약이 정말 있는지는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둘째 아이를 가졌던 봄날, "누나 옷은 다른 애 줘도 되겠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었던 기억이 난다. 마치 봄이 나를 위해서 있는 계절인 것 같았다.

오늘 저녁, 그때의 그 마음을 가만히 꺼내어 냉이 국을 끓인다. 냉이에 묻어 있는 흙냄새, 조개에 묻어 있는 바다 냄새, 그리고 우리 가족의 웃음도 함께 넣어서 끓인 냉이 국으로 봄을 마신다. 또다시 소망의 꽃씨도 텃밭에 뿌려본다. 피고 싶어서 겨우내 안달했던 시심(詩心)의 꽃망울들도 감사와 격려의 봄비 듬뿍 맞으며 일제히 함성을 터뜨리도록 소망해본다. 봄이 활짝 웃는다.

황 인 숙 시인'시낭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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