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 등쌀시대… 고개숙인 사위 "아! 백년손님"

입력 2012-02-25 08:00:00

고부갈등 옛날 얘기, 이젠 장서갈등 시끌

장모 전성시대에 사위의 입지는 줄어든다. 사진은 거실에서 장모가 사위에게 삿대질하며 충고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장모 전성시대에 사위의 입지는 줄어든다. 사진은 거실에서 장모가 사위에게 삿대질하며 충고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백년손님이라 했던 사위의 지위가 땅에 내팽개쳐졌다.

사위가 대접받는 시대는 과거가 되고 있다. 심지어 구박받는 사위들도 늘고 있다. 사위의 지위가 바뀐데는 처가 중심의 생활로 인한 장모의 실권장악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일부 장모들은 결혼한 딸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고 심지어 육아문제까지 개입하고 있다. 이 바람에 사위의 입지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가장으로서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는 사위들도 많다.

장모-사위 갈등은 주요 이혼사유로까지 거론될 정도가 됐다. 한국남성의전화에 따르면 최근 3, 4년 동안 전체 상담전화 가운데 10%는 장서갈등을 호소하는 전화라고 한다. 이옥 소장은 "장모가 나서서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소장 김흥한)는 젊은 부부를 중심으로 장서 갈등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고 밝혔다.

시어머니보다 친정어머니의 파워가 커진 만큼 능력없는 사위는 대접은 커녕 박대로 이어지기 일쑤. 심지어는 방송 드라마에서 사위가 자신의 딸에게 잘못했다는 이유로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하는 하는 장면까지 등장했다. 거실 쇼파에서 장모가 상전이 되어 사위에게 호통을 치거나 충고 및 조언을 하는 장면은 TV 속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장서갈등 갖가지 백태, '이럴수도'

장서갈등의 형태는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 형태는 부양능력이 없어진 사위에 대한 장모의 구박이다. '돈도 제대로 못 벌어오는 가장이 무슨 큰 소리치느냐'는 식이다. 가장 역할도 못하면서 딸에게도 잘 해주지 못하면 이내 설상가상(雪上加霜) 사위가 된다. 처가에 가도 따뜻한 밥과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조차 구경하기 힘들게 되는 처지가 되는 것.

김성희(가명'34'대구시 북구 태전동) 씨는 1년 가까이 아내와 별거중이다. 1년 정도 연애기간을 거친 후 결혼했는데 6개월 정도 지나면서 장모가 사위에 대해 못마땅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장모는 남자답지 못하고 소심한 사위에 대해 '앞으로 크게 쓰일 인물이 아니라'며 무시했다. 연봉 2천만원 정도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것이 불만이었다. 결국 장모가 직접 보따리를 싸고 사위의 소중한 아내를 데려가 버렸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김 씨는 결혼하자마자 자취생이 되어버렸다.

직장인 고상팔(가명'41'대구시 달서구 감삼동) 씨는 장인이 죽은 뒤, 장모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뜻하지 않는 갈등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육아문제 등으로 장모와 갈등이 악화되면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은 정도가 되어버렸다. 이러자 장모는 또 사위가 자신에게 소홀하다고 서운해하고, 아내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사위를 욕하기 시작했다. 아내조차 친정 어머니와 남편 사이에서 갈등하며, 예전에 고부갈등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아들처럼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 고 씨는 장모와의 갈등을 해결할 뾰족한 방안조차 찾지 못한 채, '늦게 퇴근, 일찍 출근'이라는 미봉책으로 일단 대처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모의 실력행사는 실로 위력적이다. 잘 나가고 능력있고 자존심까지 센 사위를 자신의 딸에게 잘못했다는 이유로 거실에서 무릎을 꿇어라고 요구할 정도이다. 삿대질이나 문전박대도 단골 장면이 되고 있다.

◆갈등의 씨앗은 높은 기대수준

사위에 대한 장모의 높은 기대수준은 갈등의 씨앗이 된다. 기대수준이 낮으면 사위에게 요구하거나 간섭할 일도 적어지게 마련. 하지만 장모의 욕심은 '아들같은 사위'를 요구하고 있다. 예전에는 '같이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고 사위를 소중하게 여겼던' 장모가 이 시대엔 감히(?) 백년손님인 사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실력행사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딸이 남편과의 갈등을 호소할 경우 무조건 딸을 지지하는 것도 요즘 장모의 보편적인 트렌드다. 딸이 남편과의 갈등으로 친정에 오면 장모는 사위가 와서 사과하거나, 각서를 쓰기 전까지는 아예 딸을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죽어도 그집 귀신'이라며 딸을 내쫓는 것은 이미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의 얘기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정일 상담위원은 "장모가 중간에서 사위와의 연락을 막으며 적극적으로 부부가 갈라설 것을 촉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개발원 장혜경 연구위원은 "고부갈등에 이어 장서갈등이 새로운 세대간의 부딪침으로 등장하고 있다"며 "그 동안은 장모 사위 사이에 '관계'가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도 없었다"고 했다.

중앙대 박정윤 가정학 교수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장서갈등의 이면에 대해 "장모는 사위에 대한 만족의 보상으로 애착을 나타낸다"며 "사위의 사회적 지위가 장모에게 만족을 주며 사위에 대한 사랑은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적인 장서갈등의 이유도 많다. 부부 상담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취업율이 높아지면서 친정 어머니에게 자녀의 대리양육 및 가사노동의 도움을 받으면서 장모가 가정 문제의 핵심적 갈등요인으로 등장하게 됐다는 것. 심지어 친정 어머니가 딸과 사위의 '침실생활'까지 간섭하는 사례도 적잖게 볼 수 있다고 한다.

호주제 폐지, 알파걸 열풍 등 여성 상위시대의 사회문화적 원인도 장서갈등의 골을 깊게 파고 있다. 조은주 여성학자는 "우리 사회에서 아들은 부모를 모시고 대(代)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가부장제의 산물인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이런 의식이 흐려졌다"며 "아들이 아닌 딸 중심의 생활은 시어머니와 장모의 지위를 역전시켰다"고 지적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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