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 유일…근대 문화도시 다시 입증, 계명대 강사 박창원씨 논문
해방 직후 지방 도시로는 유일하게 대구에서 영화사가 만들어져 시민들을 상대로 다양한 문화운동과 계몽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가 오래전부터 문화적 역량이 뛰어난 문화도시였던 사실이 문학이나 음악, 연극 등에서 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계명대 강사 박창원(45'사진) 씨는 최근 '해방기 대구경북 진보적 민족주의 세력의 영화'연극운동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1일 진보적인 예술가들이 중심이 돼 '10월영화공장'이라는 영화사가 대구에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꾸준히 '영화뉴스'라는 다큐멘터리 뉴스영화와 농촌을 찾아가는 다양한 공연을 펼친 사실도 확인했다. 박 씨는 "해방 직후 '10월영화공장'이라는 영화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구두로만 전해졌지만 이번에 당시 신문이나 자료 등을 꼼꼼히 조사해 그 실체 및 활동상황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10월영화공장'은 운동 이념과 인맥 면에서 1925년 대구의 진보적 청년들이 민중적 민족극단으로 조직한 영화'연극단체인 '대구무대협회'와 1929년 노동자'농민을 지향하면서 프로연극 운동의 통일을 천명한 '대구 가두극장'의 흐름을 잇고 있다. 일제강점기 대구의 영화'연극운동(문화운동) 주도세력은 일제에 수탈'억압당하는 농민과 노동자, 학생을 비롯한 식민지 민중의 삶을 표현한 비흥행적 영화'연극을 개척하는 데 주력했고 해방이 되자 이들 중 상당수가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민주적 민족국가와 민족문화수립건설운동을 기치로 '10월영화공장'을 창립한 것이다. 박 씨는 "일제시대와 해방기 때는 문맹률이 높고 신문 등 매체 활성화가 안 돼 있어 주로 시민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연극이나 영화로 독립 및 문화운동을 전개했다"고 설명했다.
'10월영화공장'은 1946년 11월 대구 키네마에서 '10월영화뉴-쓰'를 상영하기 시작하는가 하면 이동극단을 조직해 각 농촌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펼쳤다. 내용 또한 다양해 노동문제를 다루는 '싸우는 열차'를 비롯해 영주'봉화 수해복구공사, 전국럭비경기대회, 콜레라 방역 등의 영화를 제작해 방영했고 당대 유명 만담가 신불출 씨를 초청해 만담 공연도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10월영화공장'은 '10월영화사'를 거쳐 1946년 6월 사진예술가 최계복 등이 합류하면서 '조선문화영화사'로 조직 명칭을 바꾸고 운영체제를 영화집단에서 회사조직으로 변경했다. 해방 후 미군정 때도 '고도 경주' 등 우리역사와 향토문화 재발견을 위한 영화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영화운동을 전개해 영화'연극도시로서 대구의 위상을 높였다. 박 씨는 "이번 연구를 통해 대구의 문화 인프라와 역량 등이 일제시대와 해방기 때부터 뛰어났으며 이후 지역의 풀뿌리 문화운동으로 이어진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