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의 현재적 의미와 실천적 현실성 조명
고전을 읽어보려고 시도했다가 끝까지 읽지 못하고 포기한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린비 출판사에서 펴낸 '리라이팅 클래식'은 그런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다. 참신한 고전 해석에 쉽고 정확한 문장, 깔끔한 편집까지. 맛난 음식 아껴 먹듯 한 권씩 읽는 재미는 덤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정정훈의 '군주론, 운명을 넘어서는 역량의 정치학'. 지금까지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에 대해 갖고 있었던 막연한 선입견을 통쾌하게 뒤집어주는 책이다.
마키아벨리는 15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의 관료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활력이 정점을 지나 쇠퇴하던 시절이었으며, 이탈리아 북부 자유도시들은 오랫동안 내외적인 투쟁과 갈등의 시간을 보내왔기에 상당히 지쳐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유능한 관료였으나 파직당한 뒤 피렌체 근교에서 낮에는 산림 벌목을 감독하는 일을 하고, 밤이면 집에 돌아와 '군주론'을 집필하였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절대권력을 강조한 이유는 이탈리아에 통일된 근대국가가 수립되기 위해서는 군주의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자신에게 부여된 절대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을 철저하게 경계한다. '군주론'이 그려내고 있는 절대군주의 권력은 인민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철저하게 인민을 위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법률 외에 보다 강력한 권력' 혹은 '제왕적 권력'은 법률과 제도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근원적 위기 상황에 처한 국가를 그 근간으로부터 급진적으로 쇄신하기 위한 권력이다. 군주란 정상적인 국가의 운영을 위해서 요청되는 지도자의 상이 아니라 그가 부패라고 부른 국가의 비상사태 속에서 필요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도덕이 옳고 그름의 문제에 속한다면 윤리란 좋고 나쁨의 문제에 속한다고 했다. 통일된 강력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군주의 의지는 있지만, 도덕적 명분에 얽매이다가 결국 자신을 둘러싼 적대적 의지들과의 투쟁에서 패배하여 그 의지를 실현해낼 수 없다면 그는 결코 윤리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다. 정치에 있어서 윤리적인 것이란 정치적 의지를 실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증대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도덕의 정치가 아니라 정치의 윤리를 사고한 사상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군주론'의 집필을 끝내고 5년 후 완성된 '로마사논고'에서 마키아벨리는 국가가 제대로 건설되기 위해서 군주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절대권력을 국가의 질료인 인민을 부패시키는 위험요소로 경계하고 있다. 대신 그는 정치의 진정한 주체를 인민 혹은 다중으로 제시한다. 어떤 형태의 권력이건 가장 확고한 권력은 인민에 토대를 둔 권력이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건국은 한 사람의 역량,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역량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이지만, 그것의 유지는 여러 사람들의 상호 결합된 역량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국가의 모델은 인민들의 자유의지에 의해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지는 공화국이었던 것이다.
세계는 영원한 것에 의해 그 동일성이 보존되는 곳이 아니라 우연한 요소들의 마주침에 의해 변전하고 유동하는 곳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우연적 변화와 유동성을 '운'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운을 그 제약 조건으로 하지만 이것에 전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주체의 능력이 바로 정치적 실천의 관건적 문제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란 바로 운의 힘을 자신의 기회로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보았다.
마키아벨리는 아름답지만 추상적인 도덕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논리가 지배하는 처절한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정치적 사유를 전개했다.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실천의 현실성을 배우려는 이들이 마키아벨리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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