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신재 주세붕 선생과 풍기 교촌리 은행나무

입력 2012-02-16 14:22:23

향교 이전 기념식수…설명 없어 아쉬움

조선조 고을 수령은 하기에 따라 탐관오리도 되고 착한 목민관도 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시장, 군수도 마찬가지다. 주민의 의사와 동떨어진 행정으로 비난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정책을 펼쳐 주민의 삶의 질을 높여 후세까지 이름을 남긴 분이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분이 신재(齋)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다.

주세붕의 본관은 상주(尙州)로 조선개국을 반대하며 경남 합천에 은거해 온 선비집안의 후예다. 아버지 문보(文)대에 함안으로 옮겨 칠원(漆原)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1522년(중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별시문과에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를 시작으로 관직에 나갔다. 그 뒤 승문원정자로 당시 엘리트 공무원이 밟아야 할 필수 코스인 사가독서에 뽑히고, 정자'수찬을 역임했으며, 강원도도사 등을 거쳐 사간원헌납을 지냈다.

1537년(중종 32) 김안로(金安老)가 득세하자 외직을 자청하여 곤양군수(昆陽郡守)로 나갔다가 1541년(중종 36) 풍기군수가 되어 치적이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기회를 맞았다. 우선 낡은 향교를 옮겨 새로 짓고, 주민의 교화와 지역 출신 거유 안향(安珦)을 제향(祭享)하기 위해 백운동서원을 건립하니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嚆矢)다. 이후 군수가 된 퇴계가 사액을 받아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이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조선후기 대원군이 많은 서원을 철폐했지만 사학의 발전과 지역의 문풍 진작(振作)에 크게 기여했다.

공은 학문을 장려했을 뿐만 아니라, 어려움 해소에도 앞장서서 해결했다. 공물인 자연산 삼(蔘) 채취가 어려워 주민들이 고통 받자 재배법을 직접 개발해 안정적으로 생산하도록 하여 오늘날 풍기가 인삼의 고장으로 자리 잡게 했다. 1545년(명종 즉위년) 내직으로 들어와 여러 벼슬을 거쳐 1548년(명종 3) 호조참판이 되었다. 이듬해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백운동서원의 예와 같이 해주에 수양서원(首陽書院)을 건립하였다. 이후 대사성'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 돌아가신 뒤 소원에 따라 고향인 칠원 선영에 안장되었다.

청백리에 뽑히고,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칠원의 덕연서원(德淵書院)에 주향되었고, 소수서원에도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죽계지'(竹溪志), '해동명신언행록'(海東名臣言行錄), '진헌심도'(進獻心圖)가 있고, 문집으로 '무릉잡고'(武陵雜稿)가 있다.

공은 향교를 이건한 기념으로 당시 향교 정문이었던 지금의 경북항공고등학교 교정에 세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한 그루가 죽었으나 그 후 누군가 한 그루를 더 심어 세 그루가 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두 그루만 남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한 그루는 암나무고 다른 한 그루는 수나무였다. 비록 폭격으로 쓰러졌다고 해도 암수가 각기 한 그루씩 남아 음양의 조화를 맞춘 셈이 되었다.

학교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본래 땅보다 1m 정도 낮게 정지작업을 해서 그런지 나무가 서 있는 곳이 섬같이 고립되었다. 또한 생육 상태는 좋으나 암나무는 굵기가 상당히 떨어진다. 해마다 많은 열매를 달아 활력이 소진된 것도 한 원인일 수 있으나 충분한 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데 따른 것이 아닌가 한다.

심은 사람의 인품과 사회적인 기여도, 수령(樹齡)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나무 역시 천연기념물로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겨우 영주시의 보호수로 지정되었을 뿐인데 그것도 두 그루가 아니고 한 그루, 즉 수나무만 보호수였다.

특히 많은 학생들이 꿈을 펼치고 있는 교정을 지켜주는 이 나무를 심은 사람이 위대한 교육자이자 훌륭한 관리인 신재였다는 단 한 줄의 글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웠다. 영주가 선비의 고장으로 자리매김된 것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삼산업이 번성한 것도 신재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영주에서 신재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은 풍기인삼협동조합뿐이다. 그곳에 송덕비가 서 있기 때문이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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