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음력 정월 풍경

입력 2012-02-08 11:02:07

음력 정월은 늘 소란스러웠다. 보름 즈음에 어른들은 지신밟기를 위해 북과 꽹과리, 장구를 메고 동네 어귀에 모였고, 아이들은 쥐불놀이에 쓸 깡통을 찾아 온 마을을 헤매고 다니느라 부산했다. 쥐불놀이는 논두렁, 밭두렁 태우기와 연결된다. 낮에 논두렁, 밭두렁에 짚을 깔아 두고, 저녁에 불을 놓았는데 이를 쥐불이라 했다. 큰 보름달 아래서 달보다 몇 배나 크게 보이는 원을 그리며 뱅뱅 돌아가는 쥐불놀이 때는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불장난이 허용된 시간이기도 했다.

45년 전인 1967년 2월의 한 신문을 보면, 농촌진흥청이 각 시군에 두렁 태우기를 지시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각종 해충이 두렁에 모이기 때문에 이를 태워 없애 병충해를 막자는 내용이다. 이제는 화재 위험으로 모두 금지해 아주 오랜 옛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 이때쯤이면 약령시를 도는 지신밟기 사물놀이패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늘 시끄러웠으나 올해는 아예 들을 수 없다.

또 하나, 요즘 보기 어려운 것은 설날 세뱃돈과 함께 쏠쏠한 수입원이었던 복조리(福笊籬)다. 조리는 대나무로 만들어 쌀을 일 때 사용하는 부엌 도구다. 쌀을 이는 것처럼 복도 일어나라는 뜻이 있다. 이와 함께 한 해에 쓸 조리는 빨리 마련할수록 좋다는 속설이 있어 정초 새벽부터 골목을 다니며 조리를 파는 사람과 사려는 주부도 많았다.

복조리는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의 중요한 용돈 마련 수단이 됐다. 싸게 조리를 사와 리본을 하나 달고는 섣달 느지막이 친인척에서 이웃집, 나중에는 잘 모르는 집까지 돌렸다. 대개 섣달 그믐이나 설 아침에 수금했는데, 세배를 다니다 보면 몇 명이 몰려다니며 '조리 값 주이소'라고 떼를 쓰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들뜬 연말연시에 얼굴을 붉히기가 싫어 조리 값을 주었는데 나중에 계산해 보면 원가보다 10, 20배가 넘는 장사였으니 복조리는 그야말로 학생들에게 복덩어리였던 셈이다.

이제 도시에서 복조리는 아예 사라졌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장식용으로 파는 정도다. 지신밟기와 쥐불놀이도 각 지방자치단체가 정월 대보름을 맞아 벌이는 행사장에서만 구경할 수 있을 뿐이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뜻과 함께 그 속에 담긴 따뜻한 정이나 추억도 사라진다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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