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조금

입력 2012-02-06 07:16:34

얼마 전, 아이들의 성화에 떠밀려 햄스터 한 마리를 샀다. 몸집이 작고 통통한 놈으로 다람쥐 무늬가 있었다. 햄스터 이름을 지으려고 가족회의를 하니 많은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람쥐 무늬라고 다람쥐, 작아서 땅콩, 동그란 모양이라고 동글이, 만화영화 이름을 따서 햄토리, 그 외에 햄이, 토라, 쥐돌이 등이 나왔는데 그중 남편이 제안한 '쥐콩'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햄스터의 꼬리털이 빠진 것이다. 털은 곧 다시 날 것이지만 꼬리 없는 모습이 더 귀여웠는지 아이들은 "꼬리 빠진 쥐콩, 뒷도랑에 가지 마라. 붕어새끼 놀란다" 하며 노래를 부른다.

쳇바퀴를 넣어주었더니 처음에는 지나가는 통로로만 쓰다가 얼마 지나자 방향을 바꾸어가면서 돌리기도 하고, 돌리다가 멈추어서 재롱을 피우기도 한다. 게다가 주인을 알아보는지 우리가 가면 빤히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가면 먹을 것을 주어도 먹지 않았다.

처음 키우기 시작할 땐 일주일만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햄스터는 눈에 보이지 않게 날마다 조금씩 자랐다. 햄스터를 보면서 나는 키우는 보람과 행복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설탕을 조금 가지고도 / 음식 맛이 달게 되네 / 비누를 조금 가지고도 / 내 몸이 깨끗이 되네 / 햇볕을 조금 가지고도 / 새싹이 자라네 / 조금 남은 몽당연필로 / 책 한 권을 다 쓰네 / 조금 남은 양초 / 하늘하늘 춤추는 불빛 / 아무리 작더라도 불빛은 즐겁지 / 조금 웃는 웃음이라도 웃음은 이상하지 / 조금 웃는 아기 웃음 / 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지.'

늘 반복되는 일상을 고수하는 나에게 햄스터가 가져다주는 조금의 여유는 엘리자벳 노벨의 '조금'(A little)이란 동시를 떠올리게 한다. 너무 바쁜 일상에 쫓겨 우리는 작은 것에 무관심할 때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에 젖게 하는 것은 결코 큰 것이 아닌, 아주 소박하고 작은 것들에서 오는 것이 많다. 한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나 추운 날씨에 빨갛게 언 손을 살며시 잡아주는 따뜻한 손은 '조금'의 보석이 가져다주는 기쁨의 큰 꽃이다.

내 자신과 이웃을 기쁨의 부자로 만들 수 있는 '조금'의 조각들이 우리 주위에 허다하게 많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고 어느 한순간의 대박을 꿈꾼다. 우리는 한꺼번에 거대해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햄스터처럼 조금씩 조금씩 내실을 다지며 사는 것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남에게 조금의 사랑과 정성을 나누어주는 아름다운 마음이 결국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는 '조금'의 진리를 나는 오늘도 햄스터에게서 배운다.

황인숙 시인'시낭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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