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짐에 대하여

입력 2012-02-06 07:22:14

'인샬라'는 알라가 뜻하는 대로 라는 이슬람의 말이다. 얼핏 나약한 의타심에서 비롯된 애걸복걸이나 무책임한 자기 합리화쯤으로 여기곤 했었다. 이제야 짐작해 본다. 열 번 찍어서 넘어갈 나무인지, 애당초 오르지 못할 나무인지 이리 재거나 저리 따지지도 않겠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그냥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만, 잔걱정 잔머리 걷어치우고 온 힘을 다해 보겠노라고. 이윽고 조용히 하늘의 뜻을 기다리겠다는, 매서운 다짐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 잘 가노라 마구 내닫지 말고, 못 가노라 지레 주저앉지도 말자. 한순간의 기쁨과 슬픔마다 깃들어 있는 하늘의 뜻을 믿고서, 욕심 비우고 머리 숙여서 모든 일에 마냥 감사드릴 뿐.

'오래된 인력거'(My Barefoot Friend'2011)는 인도 거리를 누비는 인력거꾼, '내 맨발의 친구' 샬림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400만 명 넘는 극빈자들이 저마다의 아픔과 슬픔을 부둥켜안고서 살아가는 '기쁨의 도시' 캘커타. 호구를 이어가기 위하여 일찌감치 고향을 등진 그는 삼륜차를 사서, 가족들과 살아갈 자그마한 집 한 칸 마련하겠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15년을 앞만 보고서 내달려온 샬림은 이제 5년만 더 모으면, 오매불망 그리던 꿈을 이룰 수 있다.

"가끔은 행복하고 가끔은 슬픈 것, 그게 바로 인생이잖아요." 삶을 이어주는 주문인양 되뇌며 살아온 나날들. "인샬라!" 매번 신이 베풀어주신 축복에 감사하고, 문득 문득 찾아오는 아픔에 숨겨 놓으신 뜻을 헤아리며 달려온, 땀과 눈물범벅의 행복한 인력거꾼의 길. 학업마저 접고서 공장 허드렛일을 시작한 아들이 덜컥 신종플루에 걸려 쓰러졌단다. 그 와중에 고향에 남겨진 아내마저 지병이 도져 화급을 다툰다는 전갈이 날아든다. 조금씩 금이 가던 꿈이 기어코, 송두리째 무너지려나 보다.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나서야/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다는 걸 알았네./ 강물에 떠밀리지 않고 건너 목적지에/ 예정대로 닿을 수 있다는 걸 알았네. (중략) 이제 나는/ 등에 큰 짐을 지고서/ 남을 사랑한다네./ 그 무거움으로 남을 용서한다네.' (김영남의 '짐에 대하여')

감독은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 제각기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캘커타에서 만난 맨발의 인력거꾼 샬림. 인력거꾼은 누군가를 싣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샬림에게 누군가는 바로 가족이었다. 그것은 고통이겠지만, 끝까지 가족을 지켜야 하는 그 무거움은 오히려 행복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로서의 행복이란 걸 가르쳐 준 이는 바로 샬림이다." 그래서 굳게 믿는다. 가족 때문에 힘겨워 하던 그가, 가족이 있기에 힘을 얻고 일어나 다시 힘차게, 끝까지 달려갈 것이라고.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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