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댄싱퀸'으로 돌아온 겸손한 배우 황정민

입력 2012-02-02 14:15:26

무능한 변호사가 서울시장 후보로 솔직한 연기하면 감동은 저절로

배우 황정민(42)은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했고,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통해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간 연극과 드라마, 영화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흥행을 이끌기도 했고, 또 흥행은 되지 않았어도 그의 존재감은 빛이 났다. 그가 연기한 인물은 진정성이 가득 묻어났고, 감동과 웃음을 전달했다. 또 이제는 식상할진 모르지만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은 것뿐"이라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 개념까지 있는 연기자다.

황정민은 흥행에 집착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다. "흥행 면에서는 여유롭다"고까지 표현했다. 1994년 극단 학전에 들어가면서 산전수전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면서 관객이 없어 무대에 못 올린 작품이 있고, 자리가 없어 관객을 돌려보낸 적도 있기 때문이에요. 관객이 없을 때는 '아니, 이 좋은 작품을 왜 안 봐?' '우리가 몇 달씩 집에도 못 가면서 연습한 건데 왜 몰라줄까?'라는 섭섭함도 있었죠. 하지만 이미 겪어봤으니 지금은 집착하지 않아요. 물론 역할 면에서는 제 몫을 철저히 하고 싶은 욕심은 있죠." 

관객과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에게 잘 속아 넘어간다. 황정민이 아니라 극 중 인물로 변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역할이든 그 캐릭터에 녹아들고, 그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너는 내 운명'의 순박한 시골 노총각, '그저 바라보다가'의 바보 같지만 가슴 따뜻한 우체국 직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맹인 검객, '모비딕'의 열혈 기자 등 대부분의 역할이 그랬다. 지난달 18일 개봉한 영화 '댄싱퀸'(감독 이석훈'제작 JK필름)에서 무능한 인권변호사에서 서울시장 후보가 된 황정민도 관객을 캐릭터에 몰입시킨다.

황정민은 관객을 잘 속아 넘어가게 한다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말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연기자는 마술사와 같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관객을 속아 넘어가도록 해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전 그저 집중해서 그 인물을 표현할 뿐이죠. 다른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배우가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요?"(웃음)

황정민은 또 이번 영화에서 "어떻게든 재미를 주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감동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후반부 진심이 느껴지는 대사가 눈물을 한 바가지 쏟게 만드는데도 감동은 생각하지 않고, 재미만 생각했다니 놀랄 수밖에 없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영화를 보고 나서 '아! 정말 재밌다. 돈 안 아까운데?'라는 것"이라며 "나조차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렇게 말한다. 평범한 말인 것 같지만 가장 핵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댄싱퀸'을 보신 분들이 감동도 있다고 하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감동을 줘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솔직하게 연기할 때 감동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음에도 감동을 줘야 하는 신이 있다면 필히 '감동을 줘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황정민이 이번 캐릭터에 잘 녹아들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는 아마도 극 중 자신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한 점도 작용했을 거다. 자신과 엄정화의 이름이 박힌 시나리오를 받고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중간에 이름을 바꿔보기도 했지만 이미 캐릭터에 녹아들었다.

"전전긍긍했죠. '모비딕'에서도 저는 이방우라는 인물 뒤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편했어요. 이번에는 제 이름이니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죠. 하지만 숨지 말고 앞으로 나서서 저를 보여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처음에 시골에서 전학 온 아이가 이름을 말했을 때 '됐다'라고 생각했죠. 저를 가로막고 짓누르던 모든 벽이 무너지는 느낌이더라고요. 관객들도 모든 것을 놓고 이해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요? 솔직히 황정민이 시장 후보가 되는 것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상쇄시키는 게 제 이름의 효과가 아닌가 합니다."

그는 "극 중 황정민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태도, 말할 때 솔직함이 나와 굉장히 닮아 있다"고 배역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득 극에서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이나 가정을 챙기려는 모습도 그와 비슷할 것만 같다. "결혼하고 나서 일부러 집에서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그래야지 밖에서도 편하게 내 할 일을 할 수 있다"고 긍정했다. 또 "일이 없을 때는 늘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일을 맡는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그렇다면 영화처럼 실제 아내(뮤지컬 배우 겸 제작자 김미혜 씨)가 댄스가수를 바란다고 한다면? "일단 거울 앞에 데려가서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하겠죠.(웃음) 하지만 중요한 건 아내의 삶이 있다는 것이니 쌍수 들고 환영할 겁니다. 만약에 진짜 하고 싶다면 열심히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할 것이고, 대충 할 거면 하지 말라고 할 거예요."

황정민은 댄스가수를 꿈꾸는 아내로 나오는 엄정화와 함께 관객의 웃음은 물론, 눈물까지 쏙 빼놓는다. 호흡이 이렇게도 잘 맞을 수가 없다.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오감도'(2009)에서 호흡을 맞춰봐서인지 '척하면 척'이다.

"정화와는 그렇게 친해 보이려고 애를 쓰지 않았어요. 오히려 친구로 나오는 정성화와 관계가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노력했죠. 성화와는 처음 만났지만 관객이 봤을 때 처음 만난 게 아닌 것처럼 보여야 하잖아요. 촬영 전에 만나기도 하는 등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죠."(웃음)

다음에도 엄정화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면 당연히 기껍단다. 진한 멜로여도 "물론"이란다. "촬영이 끝나고 한 번은 그런 말을 했어요. 다음에는 찐~한 멜로를 하자고요. 뽀뽀도 할 수 있잖아요.(웃음) 뭐, 엄정화가 아니라 젊은 여배우면 더 좋고요. 농담이에요."(웃음)

'댄싱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물었다. 그는 "전당대회에서 '가족은 다스려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서울 시민도 마찬가지'라며 연설하는 장면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이 대사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그는 이미 이 영화를 통해 감동을 줄 수밖에 없는 연기자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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