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오만과 편견

입력 2012-02-02 11:05:24

영국의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이 쓴 소설 '오만과 편견'은 제목부터가 편견을 가지게 한다. 인간의 심성과 가치관에 대한 무게감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을 법한 뉘앙스 탓이다.

그러나 사뭇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을 듯한 제목의 '오만과 편견'은 사실 연애소설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한없이 가벼운 이야기라고만 여긴다면 그 또한 편견이다. 연애라는 다소 가벼운 소재에 인간에 대한 관점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잘 조화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다.

소설 이름인 '오만과 편견'을 새삼 들먹이는 것은 이것이 양극으로만 치닫는 오늘 우리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화두(話頭)이기도 해서이다. 특히 소위 진보 진영의 오만과 보수 진영의 편견이 그렇다. 진보 좌파는 자신들이야말로 시종일관 선(善)한 집단이라는 오만에 빠져 있다. 그들이 막상 권력을 가졌을 때 숱한 위선(僞善)이 드러났지만 아랑곳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재판 결과에 대한 대응도 그렇다. 우파 교육감의 150만 원 벌금형에 '뻔뻔스러운 인간의 당장 퇴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좌파 교육감의 3천만 원 벌금형과 업무 복귀에는 '환영'으로 바뀌었다.

곽 교육감의 선의(善意)를 강변하며 그의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을 마치 악하고 세속적인 인간으로 매도하고 있는 격이다. 합리적인 의심 대신 개인과 끼리의 믿음을 공적인 시스템에서도 관철하려 한다. 오만이다. 일부 종교 세력처럼 자기들 신앙만이 진리이며 다른 종교나 종파의 믿음과 가치관은 사악한 것으로 단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나를 믿는데, 너는 왜 나를 못 믿느냐'는 곽 교육감의 독선적인 말을 수긍해야 할까,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란 가수 김국환의 평범한 노랫말에 고개를 끄덕여야 할까. 민심은 어느 쪽일까.

'너희들이 뭘 안다고 세상을 논단하느냐. 당신들인들 별 수 있었냐'라는 보수 우익의 권위적인 편견도 문제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더라'란 식의 비아냥스런 논리로 스스로의 기득권과 허물을 호도하고 상대를 폄하해서는 안될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옳은 비판에는 서로가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오만과 편견을 지녔던 소설 속 남녀 주인공들처럼 우여곡절 끝에 갈등을 해소하고 이해와 사랑으로 해피엔딩할 수 있다면 좀 좋을까.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