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등록금 찔끔 인하 뜯어보니
지역 대학들이 이달 들어 새 학기 등록금을 3~5% 내리겠다고 잇따라 발표하고 있지만 학생, 학부모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대학들이 정부의 등록금 인하 압박에 못 이겨 내리는 시늉만 한다는 불만이다. 대학들도 정부가 대학에만 부담을 강요한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반값등록금으로 촉발된 '2012 등록금 정국'을 지역 대학 사례로 살펴봤다.
◆자구 노력에 소극적인 대학들
한국장학재단이 최근 집계한 국내 대학들의 올해 등록금 현황에 따르면 344개 대학 중 109개 대학이 지난해보다 등록금을 내렸다. 평균 인하율은 지난해 대비 4.8%로, 등록금을 인하한 대학 10곳 중 7곳이 5% 이상 내렸다.
대구경북에서는 대다수 전문대학과 경북대가 명목 등록금 5% 인하 결정을 했지만 대구대, 대구가톨릭대, 영남대, 계명대 등 주요 사립대학들은 최근 3% 인하를 결정했거나 2~5% 미만의 인하를 고민 중에 있다.
21C대구경북지역대학생연합 이창욱 집행위원장은 "사립대학은 재단이 부담해야 할 몫은 줄인 채 등록금 수입에 의존해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립대학들이 등록금 인하에 소극적인 행태는 곳곳에서 지적된다. 재단이 직원들의 연금, 건강보험금을 위해 내놓는 법인전입금이 턱없이 낮다.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교육과학기술부 '대학알리미' 사이트에 공시된 각 대학의 '등록금 산정 근거'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 영남대의 법인 및 기타 전입금 총액은 177억원으로 전년도 239억원에 비해 26% 줄었다. 계명대도 206억원에서 181억원으로, 대구대는 7억원에서 2억원으로 줄었다. 사학연금법이 재정 여력이 없는 대학들의 경우 전입금 부담을 교비에서 충당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사립대학인 울산대는 법인전입금 규모가 2010년 182억원에서 2011년 255억원으로 28% 늘어나 대조를 이뤘다.
지출은 많게, 수입은 적게 잡는 대학들의 예산편성 관행도 등록금 인하를 어렵게 하고 있다. 감사원은 최근 '대학 등록금 책정 및 재정운영 실태'를 발표하면서 "세입 부족액이 커지는 만큼 학생 부담이 늘어날 우려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역 대학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2011년 '등록금 산정 근거'로 산출한 '세출재원 대비 세입재원 부족액' 현황에 따르면 계명대가 전체 세출 2천650억원 중 239억원, 영남대는 2천800억원 중 174억원, 대구가톨릭대는 1천610억원 중 114억원, 경북대는 1천250억원 중 53억원이 부족하다고 예상했다. 울산대는 2011년 세출예상액 2천억원 중 세입부족액이 27억원에 불과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한 관계자는 "관련 법령에 따르면 가결산에 근거해 다음 연도 세입을 잡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부분 대학이 전년도 세입에 근거해 다음 연도 세입을 편성하다 보니 차액이 발생해 적립금으로 이월된다"며 "대학들이 합리적 근거 없이 방만하게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학들이 자의적으로 등록금을 책정하지 못하도록 '교육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도 최근 제기되고 있다. 대학알리미 사이트에 공개된 대학들의 학생 1인당 교육비 산정 근거를 살펴봐도 교비'산학협력단 회계와 학생 수를 기준으로 1인당 교육비를 산출했다고만 돼 있을 뿐 그 적정성을 판단할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예'결산 차액으로 조성한 과도한 적립금도 문제로 지적됐다. 지역에선 계명대가 2천100억원, 영남대가 1천300억원의 적립금을 쌓아뒀다가 여론이 비등하자 지난해 하반기 각각 190억원과 120억원을 장학적립금으로 전환했다. 수도권 주요 사립대학만큼은 아니지만 지역 대학들의 등록금 의존율도 대체로 높은 편이다. 전체 세입 중 등록금 수입이 28.1%인 경북대를 제외하면 계명대 60.4%, 영남대 63.6%, 대구대 69%, 대구가톨릭대 56.7%로 등록금이 여전히 제1 수입원이다.
대학의 인건비는 해마다 오르고 있다.'2011년 세출 수요 전망'을 보면 영남대는 전년도 1천195억원이던 교수'직원 보수가 신규 채용, 봉급 인상 등의 요인에 의해 1천270억원으로 6% 늘어났다. 계명대는 교직원 봉급은 동결했지만, 신규 채용, 건강보험료 인상 등의 이유로 996억원에서 1천20억원으로 인건비가 3% 올랐다. 대구대 역시 776억원에서 802억원으로 3.4% 올랐다.
◆등록금 해법, '고등교육 예산 확대가 관건'
대학들은 대학대로 최근의 등록금 인하 압박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대학알리미에 공지된 지역대학들의 2011년 학생1인당 교육비를 살펴보면 영남대 1천만원(이하 등록금 평균 749만원), 계명대 770만원(735만원), 대구대 820만원(713만원), 대구가톨릭대 829만원(729만원), 경북대 1천만원(449만원) 등으로 등록금보다 많은 교육 수혜가 학생들에게 돌아간다고 돼 있다. 장학금 수혜율도 40~60%에 육박한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대학 나름대로 국고사업 등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마치 대학이 공공의 적이 된 듯한 기분"이라며 씁쓸해했다.
대학들은 과도한 등록금 인하에 따른 '출혈'로 교육투자는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2.5% 등록금 인하안을 제시한 영남대 경우 45억원의 결손을 예상하고 있다. 정부 가이드라인인 5% 인하를 하면 90억원의 결손이 생긴다. 영남대 관계자는 "단과대학 운영비를 절약하는 일부터 노후건물 리모델링까지 미뤄야 한다. 과도한 등록금 인하는 학생들의 교육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걱정했다. 계명대 관계자도 "2011년 239억원의 세입 부족액이 예상됐지만 학부모 부담을 감안해 등록금을 동결했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 측도 "지난 3년간 등록금 동결로 90억원, 올해 등록금 3%로 인하로 30억원 이상의 재정 부담을 안았다"며 "경상비 절감, 법정부담금 확대, 기금 인출 등으로 부족한 재원을 충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지역 대학들 경우 지난 3년간 등록금을 동결한 데 이어 정부 재정지원사업에서 불이익을 입지 않기 위해 또다시 등록금을 내려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정부 재정지원에 목매지 않는 수도권 대학들과 달리 지방대학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반값등록금으로 촉발된 등록금 문제의 핵심은 소득수준에 비해 등록금은 많이 내면서도 질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 대학 등록금 수준은 2, 3위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49위에 불과하다. 정부의 학비 지원이 낮다 보니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교육비가 높고, 대학들도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현재 GDP 대비 0.6%에 불과한 국내 고등교육예산을 OECD 평균인 1%로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지역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고등교육예산 확보를 위해 세금을 더 늘리자는 게 아니라 정부가 예산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면 된다. 4대강 사업 예산이 수십조원을 훌쩍 넘는다는데 7조원이면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다"며 "대학만 옥죌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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