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 흥행 후폭풍 "사법부, 보고 있나"

입력 2012-01-27 10:54:00

"사법불신 대체 어떻길래" vs "가해자가 투사로 변질" 공정성

사법부가 영화 '부러진 화살'로 공정성 심판대에 올랐다.

소송당사자였던 대학교수가 재판장을 향해 석궁테러를 가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26일 현재 120만 관중을 돌파하면서 최고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중.

관객들은 지난 해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던 영화 '도가니'를 떠올리며 '부러진 화살'을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다 대법원이 이 영화에 대한 대처요령을 담은 문서를 각 법원에 내려보내고, 판사들도 내부 게시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어 상당기간 국민적 관심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엇갈린다. '대학교수였던 사람이 얼마나 사법 불신이 심했으면 판사에게 폭력을 휘둘렀을까'라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가해자가 오히려 정의의 투사로 변질되면서 사법 불신을 가속화시켜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정지영 감독은 "90% 사실에 근거했다"며 특권의식과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사법부를 정면 겨냥하고 있다. 25일 영화를 본 한 시민(50)은 "우리사회에 법원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판결에 대한 논란에다 일부 판사들의 법정 막말에 대한 사례까지 드러나면서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민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 영화가 사법개혁의 단초가 되고 원동력이 되면 좋겠다. 하지만 혹시라도 재판부에 대한 공격이나 판사 개인에 대한 위해가 정당화되거나 옹호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시민 정서와는 달리 법원의 우려는 크다. 대구고법 한 판사는 최근 이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영화가 원래 허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지만 너무 한쪽의 사실만 가지고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봤다면 판결문도 한 번 보고 판단해달라"고 했다.

대구지법의 다른 판사는 "판결이라는 것이 어느 한쪽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매번 재판부를 향해 테러를 가하고, (영화에서처럼) 가해자가 정의의 투사처럼 그려지면 사회질서 근간이 무너진다"고 했다.

이 사건 당시 주심 판사였던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25일 사법부 내부 통신망에 "인내심의 한계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든다"며 자성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3명의 판사로 구성된 재판부의 합의과정은 공개하지 아니한다는 법원조직법을 현직 부장판사가 위반하면서 실체를 알리려 한 것이다.

법조계에선 자성의 소리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도가니에 이어 부러진 화살도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국민과의 소통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동안 국민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판결을 일삼은 사법부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대 나태영 교수(법학부)는 "피해자가 현직 판사였다는 점에서 재판부가 좀더 신중한 재판 진행을 했어야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석궁을 들고 판사를 위협한 방식은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북대 김규원 교수(사회학과)는 "민주주의의 기반은 법치주의이므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진중해야 한다. 동시에 사법부도 국민들의 다양한 가치와 의식 변화를 얼마 만큼 반영했는지에 대해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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