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 제도가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화두가 되고 있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사회문제화되면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출자총액제한제를 보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도 10대 핵심 정책의 하나로 출총제 부활을 제시한 상태다.
출총제란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순자산액의 일정 비율을 초과해 국내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으려는 조치로 1986년 처음 도입된 이후 개정과 폐지, 부활을 거듭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09년 3월 최종적으로 폐지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국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늘린다는 게 폐지 이유다. 이 조치로 삼성, 현대차, SK, 롯데, GS 등 10개 기업집단 31개사의 투자 규제가 풀렸다.
대기업들은 느슨해진 규제를 틈타 외식사업과 소모성 자재구매대행(MRO) 등 중소기업 영역까지 침범, 계열사를 동원해 물량 몰아주기에 나섰고 재벌 가계 2'3대들은 외식사업과 명품'외제차 수입에 경쟁적으로 매달려 왔다.
정치권이 새해 벽두부터 다시 출총제 카드를 꺼낸 든 것은 벼랑으로 내몰린 중소'영세업체들의 아우성과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지방 경제에 있어 재벌(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더욱 치명적이다.
대기업 본사가 모두 서울에 몰려 있는 탓이다.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의 갈등 구조에다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란 두 가지 문제에 지방 경제는 모두 노출돼 있다.
대기업이 비대해지는 만큼 지방은 영양결핍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지난 20~30년간 대구경북 경제를 되돌아보면 이 같은 모순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있다.
내륙 도시인 대구는 1990년대까지 비교적 탄탄한 자주 경제권을 형성해 왔다. 지역에서 성장한 기업들이 건설과 유통, 금융 부문을 장악하고 있었고 섬유와 기계 등 전통 제조업도 경쟁력을 유지했다. 여기에 구미와 포항 등 공단 도시의 활력도 지역 전체 성장에 큰몫을 해왔다. 하지만 IMF를 기점으로 한국 경제가 대기업과 서울 중심의 수직 계열화된 구조로 바뀌면서 대구경북은 하청 도시로 전락했다.
IMF 외환위기로 지역 대형 건설사가 무너진 틈을 타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이 순식간에 지역 주택 시장을 장악했고 지역에 기반한 유통업체들은 대기업 계열사들의 자본 및 물량 공세에 밀려 하나둘 경영권이 넘어갔다. 물론 지역에 본사를 둔 제2금융권도 도산하거나 서울에 본사를 둔 금융회사에 합병이 됐다.
주택과 유통은 일반 서민들이 가장 많은 돈을 소비하는 곳이다. 주택과 유통 시장이 서울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지역에서 소비된 돈은 고스란히 서울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결론적으로 지방은 단순 생산과 소비를 하는 '하청 도시'가 된 셈이다.
이제 자주 경제권을 상실한 지방 경제에 있어 서울 대기업은 '필요악'과 같은 존재가 됐다.
이들의 투자 발표에 따라 땅값과 집값이 뛰고 행여 공장 철수 소문이라도 들리면 머리띠를 매고 거리에 나서 대기업 오너들에게 '동정'을 호소해야 한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임기 중 투자 유치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대기업 문턱이 닳도록 밟아야 한다. 이들이 아니면 젊은층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경제에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현실적인 존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수도권에 인구의 반이 몰려 있지만 아직 지방에도 절반의 국민이 살고 있다. 돈이 돌고 기업과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지방에서도 재벌이 나와야 한다.
10여 년 전 대선에서 정치'행정 중심의 '지방 분권'이 화두가 됐다. 올해 선거에서는 지방의 경제 분권이 이슈가 되길 기대해 본다. 서울 대기업의 탐욕스런 욕심을 막고 지방 경제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출자총액제한' 이상의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 유권자들이 강한 목소리를 내고 이슈로 만들어야 한다.
이재협/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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