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설 증후군

입력 2012-01-21 07:06:49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예전에는 설이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들뜬 분위기였다. 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 아이들이 맨 먼저 할 일은 목욕탕 가는 것이었다. 아버지나 어머니 손에 이끌려 1년에 두세 차례 정도밖에 가지 않던 목욕탕에서 겨우내 묵었던 때를 벗겨 내는 일은 고역이었다. 빳빳한 이태리타월로 피부가 벌겋게 되도록 밀어도 시꺼먼 때가 끝도 없이 나오곤 했다. 설 전날 어머니가 설빔으로 사오신 옷을 입어보고 신도 신어볼 때면 기분이 날아오르는 듯했다. 설날이 되면 평소에 꾀죄죄한 아이들은 말끔한 '꼬마 신사'로 바뀌어 있었다. 세뱃돈이 얼마나 들어올지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는 것도 큰 재미였다. 어른들도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는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냈다. 이는 1960, 70년대 흘러간 풍경일 뿐이다.

요즘에는 설날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과거에는 설날을 규범적으로 보냈지만, 요즘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널려 있다. '명절 증후군'을 겪는 며느리들도 꽤 있다. 시댁 가기를 아예 거부하거나 갔다 와서는 드러눕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며느리들이 말하는 '남보다 훨씬 못한 가족들'의 사례도 넘쳐나고 있다. ▷아예 오지도 않고 남편만 보내는 동서 ▷빈둥거리며 아내만 부려 먹는 남편 ▷손에 물 한 방울 묻히려 하지 않는 시집간 시누이 ▷잔소리만 하는 시어머니…. 이는 가족 불화의 원인이 된다. 설날이 끝나는 2월만 되면 이혼 신청이 급증한다고 하니 명절이 오히려 가족 관계를 파괴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

남자들의 '이몽룡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니다. 춘향전의 이몽룡처럼 그럴듯한 모습으로 고향에 가야 하지만, 취업을 못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은 이들은 죽을 맛이다. 친척들이 "취직은?" "결혼은?" "월급은 얼마?"라고 한두 마디 내뱉을 때면 가슴이 답답해지기 일쑤라고 한다. 빈손인 탓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들은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그렇다고 명절 자체를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진정으로 가족 모두가 웃고 떠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 우선이다.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가족이나 이웃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모두가 화목하고 웃음 가득한 설이 됐으면 좋겠다.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