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문제 하나 내겠다. 지긋지긋한 시험문제는 아니니 안심하시라. 지동설, 영화, 전화, 세탁기, 비행기, 슈퍼맨, 아파트, 테마파크, DNA, 인터넷, 아이팟… 이것들의 공통점은? 문제가 너무 포괄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보면, 이것들의 공통점은 세상을 바꾼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인간은 정확히 98.77% 침팬지의 유전자 구조와 일치한다. 하지만 침팬지와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 것은 1% 남짓의 차이다. 이 차이에는 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중의 하나가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도구적 인간이란 것이다. 물론 침팬지도 기초적인 도구를 사용한다. 인간이 침팬지와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에서의 다름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스스로 도구를 만들어 내는 생각, 즉 '창조적 능력'에서의 차이를 의미한다. 도구를 사용하는 목적은 당면한 '문제'(Problem)를 '해결'(Solution)하기 위해서다. 기존의 생각이나 관념으로 접근해서는 새롭게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여기에는 다른 방법과 다른 생각 도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의 토대 위에서 창조적 상상력은 태어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역사는 '상상력의 세계사'이며 동시에 '상상력 박물관'이다. 돌도끼에서 컴퓨터까지, 놀이에서 테마파크까지- 그것이 인간이 고안해낸 물리적 도구이든, 새롭게 발견해낸 개념이든, 모두 상상력의 신세를 지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상상력은 이렇게 세상을 바꿔왔다.
문제를 하나 더 내보겠다. 이번엔 조금 더 쉽다. 다음의 사람이 누구인지 추측해 보는 것이다. 이 사람은 뛰어난 미각과 패션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장식, 오락 그리고 교육과 교통에 관련된 일을 한다. 이 사람은 심리학, 로맨스 그리고 문학, 의약에 남다른 관심이 있다. 또한 공예와 미술, 원예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이 사람은 경제, 정치는 물론 이웃과의 관계, 소아의학, 노인의학에도 조예가 깊다. 이 사람은 접대, 관리 그리고 구매, 광고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법률과 회계, 종교와 에너지에 정통하다. 그리고 이 사람은 무엇보다도 경영의 천재이다.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힌트:우리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다.) 짐작했듯이 이 사람은 아주 특별하지만 우리 생활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다. 다름 아닌, 그녀는 바로 주부라는 것.(이 질문은 어느 외국 기업의 광고를 각색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 간단하게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결론지어 버리는 것이 바로 주부의 일상. 하지만 조금만 더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사실 거의 모든 종류의 일에 관련된 것이 주부의 일이다. 요즘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스팀청소기는 주부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한 주부의 상상력에서 나왔다.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스팀다리미와 대걸레 사이에서 스팀청소기라는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아낸 것. 이렇게 현대적 의미의 '도구적 인간'은 기존의 관계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요소들이나 기존의 시선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연결시켜본다. 이것으로부터 매력적인 상상력이 태어나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도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상상력에서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고 있다. 바야흐로 상상력이 경쟁력의 원천인 시대.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던 유사성을 찾아내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 상상력은 영화나 광고,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상상력은 우리가 만나는 일상의 모든 것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를 일. 세상을 바꾼 상상력은 이렇게 일상의 작은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린 가끔, 인생이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했던 경험과 그로 인한 즐거움이 없었다면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이런 말을 했다. '행복은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이라고. 지금, 일상이 따분하고 지루하다면 생각해보라. 세상을 바꾼 것은 상상력이라는 인간의 '생각도구'였다는 것을. 당신이 지금 떠올린 작은 생각이 '상상력의 세계사' 중 한 페이지를 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임헌우/계명대 교수.시각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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