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연구는 거센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 매우 고된 작업이다. 워낙 자료가 빈약하다 보니 발심으로 달려들었다가도 몇 해 못 가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단군만 하더라도 한'중'일의 자료를 다 뒤져도 A4 용지 2쪽을 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웬만한 공력으로는 도전하기도 힘들뿐더러 공부했다고 해도 어지간히 해서는 이 바닥에 명함조차 내밀기가 힘들다.
우리나라 상고사에 상당히 박식함을 자랑하는 한국국학진흥원 윤용섭 부원장이 경상북도에 근무하던 시절 상고사 연구 분야에 상당액의 금액을 배정하고 모 대학에 연구를 부탁했더니 절레절레 두 손, 두 발을 다 흔들더라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한 강단사학계의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동북아공정에 대응하는 측면에서라도 기존의 일제에 의해 주도된 이병도 계열의 고대사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학설이 등장해야 할 시점이지만 우리의 형편은 지금 환단고기나 단군세가 계열의 일방적 민족주의 경향을 강단사학계가 배척하는 형국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내딛지 못하고 있다.
일거에 이것을 뒤집은 이는 경주 사는 52세 문경 사람 정형진이다. 남들이 대학 졸업하고 먹고사는 일에 목 매달 때 그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중원 천지를 헤매고 다녔다.
스물다섯 해를 방대한 지역을 돌며 우리 민족의 시원을 밝히는 일에 매달려 드디어 한민족 공동체의 시발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은 책 4권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그의 새로운 가설은 강단사학에서도 인용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가 제기한 설이 머잖아 정설로 굳어진다면 그건 아마 관점을 달리한 그의 연구방식이 주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중국의 신화 속에서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동한 주민에 대한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남들이 비교적 소홀히 하기 쉬운 언어학적 연구 결과를 활용했으며 고대 종교를 추적하고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바위나 강가 절벽에 새겨진 고대 신앙흔적에 대해서도 각별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특히 매장 유물에 표현된 여러 문양의 상징을 연구함으로써 특정 집단의 흐름과 생각을 읽어내는 성과를 얻었다. 정형진의 연구로 상고시대 한민족을 주도했던 엘리트 주민들에 대한 정보축적이 가능해졌다는 것만으로도 역사를 공부하는 학인으로서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은 심정이다.
(안동시역사기록관, 시인'시나리오 작가)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