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주먹…신고학생 70% "보복당해"

입력 2012-01-12 09:50:03

폭행정도 심해도 솜방망이 처벌…학교측도 징계 두려워 합의 유도

#.대구 북구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A군은 수개월에 걸쳐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툭하면 욕설과 함께 주먹이 날아오거나 돈을 빼앗기는 일도 다반사였다. 견디다 못한 A군은 부모에게 속내를 털어놨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학교 측에 부모가 항의하자 학교 측은 엉뚱하게도 가해학생을 A군의 '지킴이'로 만들었다. 다른 학생들이 A군을 괴롭히지 않도록 폭력 가해자더러 지키라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가해학생과 붙어 지내야 했던 A군은 더욱 심각한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부산의 한 중학교 2학년 B군은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지난해 휴학했다. 미국에서 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온 B군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학교폭력의 희생양이 됐다. 급우들의 주먹질에 코뼈까지 부러졌다.

B군의 아버지가 학교에 항의했지만 "'일진'에게 맞은 것이 아니니 학교폭력이 아니다"는 황당한 답변만 들었다. 결국 B군은 6개월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1년간 휴학한 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다.

학교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2차 피해를 부르고 있다. 학교에서 법적으로 규정된 보호 조치를 외면하고 있고,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교폭력에 노출된 학생은 심리상담이나 일시보호, 요양, 학급교체, 전학권고 등 다양한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다. 가해학생의 보호자는 피해자의 치료와 요양에 들어가는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실제 이 규정이 지켜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학교폭력을 친구들 간 단순한 다툼 정도로 치부하고 덮기에만 급급하기 때문. 이 때문에 학교폭력을 신고한 학생들 중 70% 이상이 재폭력에 시달린다는 게 교사들과 청소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가해 학생은 서면사과나 학급 교체, 전학, 사회봉사, 심리치료, 출석정지 등 다양한 처벌과 징계를 받게 돼 있다. 폭력행위가 심할 경우 나이와 죄질에 따라 형사처벌이나 '소년법' 상의 보호처분도 받는다.

그러나 전학의 경우 보호자가 거부하면 강제로 보낼 방법이 없고 오히려 피해 학생이 전학을 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피해 학생은 1명인 데 비해 가해 학생은 여러 명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폭력을 휘둘렀더라도 형사처벌이나 보호처분을 받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구지법 이재덕 공보판사는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이고 자칫 예비 범죄자로 전락할 우려가 있어 학교폭력만으로 형사처벌을 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수사기관도 심각한 범죄가 아닌 이상 대부분 훈계하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구 지역 한 변호사는 "또래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중학생을 두고 해당 학교 교장이 '어떻게 하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문의한 적도 있다"며 "징계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학교 측이 사법기관까지 오기 전에 부모 간의 합의를 유도하고 피해를 덮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학교폭력예방센터 김건찬 사무총장은 "학교폭력 예방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는 등 기존 제도를 강화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달 중에 ▷가해 학생에 대한 '강제 전학제' ▷학교가 문제 학생의 학부모를 강제로 부르는 '위기학생 학부모 소환제' ▷'학생부 폭력 기록제' 등 한층 처벌이 강화된 '왕따 폭력 방지법' 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