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암 투병·뇌성마비 아들 돌보는 김억순 씨

입력 2012-01-11 09:51:58

"아픈 아들보다 바늘값 더 무서워, 못된 엄마죠"

김억순(가명
김억순(가명'여'55) 씨는 두 가지 암과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들 조정민(가명'30'정신지체장애 1급) 씨가 인생의 전부다. 지난 30년간 불행을 겪었지만 아들만 완치되면 그래도 앞날은 행복하리라 믿는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아들 몸에 수시로 갈아끼워야 하는 의료용 바늘 한 개 값이 1만2천원이에요. 수시로 끼웠다 뺐다 해야 하니 얼마나 아프겠어요. 하지만 아들이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리는 것보다 저 바늘 값이 더 무섭고 두려워요. 참 못된 엄마죠."

10일 오전 대구 중구의 한 대형병원 휴게실. 김억순(가명'55'여) 씨가 아들 조정민(가명'30'정신지체장애 1급) 씨와 함께 앉아 있었다. 정민 씨는 억순 씨의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말도 몸짓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이 엄마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표현법이다. 엄마와 뇌성마비 아들은 지난 30년간 두 손을 꼭 잡고 세상을 헤쳐 나왔다. 하지만 아들의 몸을 뒤덮은 병마 앞에 엄마는 꼭 잡은 손을 차마 놓게 될까 두렵다.

◆불행의 연속

억순 씨는 1979년 경북 안동의 한 고무제품 공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다섯 살 연상인 줄 알았지만 남편은 나이를 속였다. 억순 씨보다 한 살 어렸다. "열심히 살자"던 남편의 맹세도 거짓이었다. 남편은 다니는 직장마다 일주일도 안 돼 그만두기 일쑤였다. 하루 종일 거리를 떠돌며 술에 취해 살았다.

결국 억순 씨가 가장이 됐다. 그러다 1983년 아들 정민 씨를 낳았다. 세 식구는 가난했지만 억순 씨의 억센 생활력 덕분에 근근이 버틸 수 있었다. "아들만 바라보고 이를 악물고 살았어요. 잘 키워서 가난도 무식도 내 세대에서 완전히 끊고 싶었어요."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불행이 억순 씨 가족을 옥죄기 시작했다. 정민 씨가 9살 되던 해에 병원에서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것. "아이의 성장이 유난히 더뎠지만 먹고살기 바빠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도 못했죠. 하루는 아이가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의사가 선천성 뇌성마비라고 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민 씨가 10살 되던 해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모자 둘만 세상에 남았다. 억순 씨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들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일하러 간다고 맡길 곳도 없었다. 억순 씨는 다니던 식당 허드렛일을 그만두고, 아들만 돌보며 지냈다. "이사만 스무 번 넘게 다녔어요. 고향에 있는 친정 어른들 집에서 농사일을 도와주고 몇 달씩 지내며 떠돌기를 반복했어요."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1999년 정민 씨가 병원에서 궤양성 대장염 진단을 받은 것. 병은 점점 악화됐다. 혈변과 황달이 계속 나타났고,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억순 씨는 친척과 이웃에 푼돈을 꾸고,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으로 치료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러던 중 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지난해 11월 조직검사를 받은 정민 씨가 대장암과 결장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엄마 없인 아무것도 못해

막대한 비용이 드는 암 치료를 앞두고 억순 씨는 정민 씨를 보호시설에 맡기고 돈을 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보호시설은 가는 곳마다 퇴짜를 놓았다. "정신지체장애 1급에 암환자인 정민이를 대놓고 거절하더라고요. 다루기 쉬운 환자만 받으려고 한 거죠."

아들은 엄마와 떨어지기만 하면 불안 증세를 보였다. 정민 씨는 첫 암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로 옮겨져 혼자 지내게 됐다. 그러자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침대에 손발을 모두 묶어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틀 만에 엄마가 곁에서 간호할 수 있는 일반 병실로 돌아왔다. "수술할 때마다 항상 마음을 졸였어요. 혹시나 엄마가 옆에 없다고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그래서 잘못되지는 않을까. 평생 아프기만 했던 내 아들, 나보다 먼저 가면 어떡해요?"

평소 40㎏대를 유지했던 정민 씨의 몸무게는 지금 32㎏이다. 안 그래도 허약한 체력에 지난 1년간 암 치료를 받은 결과다. 정민 씨는 이제 더 힘든 치료를 앞두고 있다. 다음달 2일부터 방사선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예상 비용만 400만원이다. 그 외 입원비와 각종 약값을 떠올리면 억순 씨는 앞길이 막막하다. 게다가 대장암과 결장암을 한꺼번에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도, 시간도 얼마나 더 들지 알 수 없다.

억순 씨 모자에게는 10여 년 전 마련한 보금자리인 36㎡의 낡은 아파트가 전 재산이다. 수입은 매달 나오는 국민기초생활수급비 48만원과 장애연금 15만원이 전부다. 억순 씨는 병원에 올 때면 밥값도 아까워 집에서 도시락을 싸온다.

억순 씨는 병원을 나서는 순간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억순 씨가 아닌 정민 씨의 꿈일지도 모른다. "아들이 완치되면 학교에 꼭 보내고 싶어요. 뇌성마비에 병마와 싸우느라 지난 30년 동안 학교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내 아들입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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