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거울 보기가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늘어난 주름 때문이라기보다는 얼굴 근육이 부자연스럽게 굳어있는 걸 발견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셀카(셀프 카메라)를 찍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얼굴이 이렇게 변했을까요. 그러고 보니 어른들, 인생 선배들의 말 가운데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셀카를 찍어대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던 이십대의 저를 보며 '나이 들어봐라, 사진 찍기가 두렵다'고 하던 말을 고스란히 제가 하고 있으니까요.
참 두렵습니다. 세월만큼 변해가는 얼굴이,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이 두렵습니다. 조금만 더 살면 얼굴에 그동안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겠지요. 아니, 이미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이런 말을 한다고 야단치실 어른들이 더 많으시겠지만 관대하게 봐주십시오. 인생 선배님들도 제 나이에 이런 걱정 한번쯤 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쉰, 예순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맑고 고운 표정과 얼굴을 간직하고 계신 분들이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동화 속 주인공, 위인전 속의 인물을 멘토로 삼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주변에서 멘토들을 찾게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주변에는 맑고 고운 얼굴을 간직하신 '멘토'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자리에 계신 어느 분은 '기부하고 아랫사람들 챙기고 나면 사치할 돈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십니다. '내 것'을 먼저 챙기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먼저 실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분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다른 어느 분은 명절 때마다 경비 아저씨, 청소 아줌마들 선물은 꼭꼭 챙기십니다. 우유배달, 신문배달 오는 분들에게도 항상 따스한 인사말을 건네는 걸 잊지 않는 것도 물론입니다. 두 분 모두 연세에 비해 맑고 고운 눈빛과 얼굴을 가지고 계십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나도 저분들처럼 저렇게 살 수 있을까'라고 말이지요.
어쩌다 보니 저도 지난연말에 기부를 했습니다.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라는 명목은 아니었고, 지난가을 막둥이 돌을 기념해 돌잔치를 대신해 기부하기로 결심했던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실행 시기가 연말이 된 것입니다. 매달 월급에서 일정부분 자동이체되는 형식으로는 해봤지만 한번에 일정 금액을 기부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요즘 돌잔치를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준비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돌잔치에 초대되는 사람들의 부담도 적지 않습니다. 둘째아이 이하의 돌잔치를 하는 것은 민폐라고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저 또한 막내는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돌을 기념해서 말로만 듣던 기부라는 것을 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늘 기부를 해오던 사람이라면 척척 방법과 시기를 알겠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기부용으로 따로 빼뒀던 돈이 경조사비, 생활비 등으로 스르륵 새어나가 버렸습니다. '에이, 돈도 없는데 그냥 넘어가버릴까.' 처음엔 기부에 흔쾌히 동의했던 남편도 기부 이야기를 잊은 듯했습니다. 여유가 없으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연말은 다가오고 문득문득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떠올려보면 아기 때 요정들이 해준 축복이 공주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우리 아이를 위해 축복해주기로 한 것을 안 했다고 생각하니 찜찜하기까지 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실행해야지 싶어 처음 계획했던 돈보다는 적었지만 일정 금액을 따로 빼냈습니다.
다음 문제는 어디에다 기부할 것인가였습니다. 큰돈도 아니면서 생각은 세계적인 구호단체까지 넘나들었습니다. 그러다 학창시절 몸담았던 동아리 후배들에게 사용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시설 아이들을 후원하는 동아리였고 마침 후배들이 크리스마스 행사 비용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시기적절했습니다. 마음이 다시 변하기 전에 서둘러 계좌이체를 하고 후배들에게 전화로 알렸습니다. 자신들은 더 고생하면서도 고맙다고 거듭 인사해오는 후배들을 보니 미안한 생각과 뿌듯한 마음이 겹쳤습니다.
여하간 이벤트성 나눔이기는 했지만 그간 어깨너머로 배운 멘토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한 것 같다는 생각에 지금까지도 뿌듯한 마음입니다. 기부 한번 했다고 이렇게 신문에다 떠들어대니 단번에 인상이 환하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새해 첫달인데 뭔가 새로운 각오 하나쯤 더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더 늦기 전에 '내 얼굴은 내 책임'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살아야겠습니다.
임언미/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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