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朴과 安, 그리고 정치적 낭만주의

입력 2012-01-07 07:12:36

금년은 20년 만에 대선과 총선이 한 해에 치러지는 만큼 벽두부터 각 언론사는 선거의 향방을 점치는 각종 여론조사를 쏟아내고 있다. 다양한 여론조사임에도 그 꼭두는 오로지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일찌감치 대선주자로 독주해 온 박근혜 위원장과 지난해 벼락같이 후보군에 등장한 안철수 원장은 모두 행정 경험이 전무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정치인이긴 하지만 행정부의 수반임을 고려한다면 이는 꽤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대다수 국민들이 행정 경험 없는 두 분에게만 표를 던지겠다는 이러한 모험은 우리 국민들에게 내재된 일종의 '낭만적'인 의식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낭만적' 혹은 '낭만주의'란 말은 원래 문예용어를 가리켰지만 나중에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데까지 두루 사용되었다. 물론 그 뜻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처음에는 '소설같다'(romantisch)하여 진실하지 못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훗날 이 말이 사회에서 풍미하면서 섬세한 심정을 낭만적이라 했고 나아가 자연 풍경의 특정한 것, 야생적인 것, 자연 속의 훼손되지 않은 미를 낭만적이라고 일컬었다(지명렬, '독일 낭만주의 총설'). 한 걸음 더 나아가 낭만주의 이론가 F.슐레겔은 낭만주의를 '역설'(paradoxie)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도덕적 규범에 제약받지 않는다, 이성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모순처럼 보이는 비범한 것이다 등으로 규정한 바 있다.

낭만주의는 19세기 독일 문학에서 크게 번성하여 그 영향이 유럽 각국으로 번져나간 흔치 않은 예다. 이는 독일의 정치 지형과 관계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이다. 당시 독일은 유럽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시민계급이 가장 늦게 형성되었고 통일국가도 뒤늦게 이루어졌다. 요컨대 낭만주의는 민족의 고난에 근거하고 있으며, 불행한 민족일수록 낭만적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웬만큼 낭만적인데, 그 이유가 독일의 경우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열강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작은 민족국가이고 가장 늦은 시기에 근대화의 문이 열렸고, 지난 천 년간 통일된 나라가 오늘에 와서는 남북으로 갈라진 상태다. 고난이 안겨주는 현실과 이상(理想) 사이의 격차가 우리 국민에게 낭만주의적인 꿈을 자꾸만 형성시키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이어져왔던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대선 후보 독주를 이 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도 없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은 그의 따스한 미소에 감동했다. 그에게는, 국민을 사랑하여 질곡으로 몰지 않을 것이라는, 그래서 이전 대통령들과는 다를 거라는 희망이 존재한다.

작년에 갑작스럽게 수면 위로 등장한 안철수 원장의 경우는 더 확연하다. 전부터 존경받는 실업인이긴 했으나, 대선과 맞물리면서 청년 실업, 이념 대립, 빈부의 양극화를 해결할 적임자로 부상한 것이다. 게다가 기성정치인들과 다른 태도까지 보임으로써 기존 정치 구태를 뜯어고칠 거라는 열화 같은 소망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두 후보에 대한 '낭만적인 지지'에는 비낭만적인 현상이 아울러 함유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속을 들여다보면 두 후보는 서로 매우 다른 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다. 40살을 기준으로 해서 그 위로는 박근혜를 그 아래로는 안철수를 꼽는데, 그 차이가 지금까지의 어떤 대선 후보보다 더 현저하다. 마치 선거 때마다 발생되는 격심한 지역 배타성을 연상할 정도이다. 한 가지 예에 불과하지만, 이는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그는 낭만적인 소망과 무관하게 지독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진실을 미리 적시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내세워 압도적인 표를 얻었다. 그의 이전 성공 신화를 보아 '747공약'은 현실이 될 거라고 믿었다. 이제 이 대통령에 대한 좌절은 우리 국민에게 이전보다 더 깊은 낭만적 소망을 심어놓은 것 같다. 정치가 현실임을 누구보다 잘 알 두 사람은(한 사람은 아직 대선후보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적나라하게 현실 앞에 노출되고, 또 극복해나가는 능력을 보임으로써, 국민들의 낭만적 소망을 그르치는 일을 다시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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