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본 영화 '빠삐용'을 이제 거의 잊었다. 하지만 절대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스티브 맥퀸이 까마득히 높은 벼랑에서 뛰어내려 탈출에 성공한 마지막 장면, 작은 점이 되어 멀어지는 친구를 바라보며 간신히 울음을 참던 벼랑 위 더스틴 호프먼의 표정. 내 기억이 맞다면 더스틴 호프먼이 연기한 배역 이름이 '드가'였다. (김세윤의 '아찔하고 아름다운 구름 속의 산책' 중에서)
이 시대의 빠삐용은 누구이고 드가는 누구일까? 나는 빠삐용인가, 드가인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가? 차라리 바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세상과는 소통하지 않고 겨울을 지내고 있다. 신기한 건 그렇게 소통을 거부함에도 그 일 자체가 이미 세상과의 소통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사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습으로 살기를 거부한다면 최소한 난 빠삐용이나 드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게다.
"잘 모르겠어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긴 시간의 대화 끝에 그 아이는 언론과 관계된 일에 종사하고 싶다고 했다. 돌아서는 아이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선생님이란 직업이 그렇다. 이것 자체가 이미 내 꿈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꿈을 도와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빠삐용일까, 드가일까? 요즘 그런 생각이 많다. 누군가가 꿈을 이루려고 떠날 때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남은 내 삶은 빠삐용이 아니라 드가로서의 삶에 충실하고 싶은 바람. 그것이 훨씬 쓸모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맨 온 와이어'. 어릴 때 우연히 잡지에서 쌍둥이 빌딩의 조감도를 만난 영화 속 주인공 펠리페는 빌딩 양쪽에 줄을 묶고 건너는 꿈을 가진다. 결국 펠리페는 그 꿈을 이룬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자신의 꿈을 향해 평생을 걸어가는 펠리페보다는 그런 펠리페의 꿈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그의 친구들이다. 줄 위에서의 8시간 공연 후, 펠리페는 다시 땅 위에 내렸다. 펠리페는 울지 않는다. 하지만 줄을 매고, 당기고, 카메라로 찍고, 줄 아래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과 조마조마하게 지켜본 그의 친구들은 울음을 터뜨린다. '맨 온 와이어'에는 펠리페가 아니라 그를 응원한 많은 사람들의 풍경이 있다.
선생님은 빠삐용이기도 하고, 드가이기도 하다. 펠리페이기도 하고, 그의 친구들이기도 하다. 내 꿈이 선생님이었으니까 난 이미 빠삐용이고 펠리페이다. 그러면 이제 드가와 펠리페의 친구들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이 그런 사람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불가능한 상상도 했다.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 하지만 그 꿈이 타인의 꿈과 행복에 도움을 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일까? 그게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까?
빠삐용이나 펠리페가 아닌 드가나 필리페의 친구들이 많은 세상. 이미 욕망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는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이런 마음도 단지 꿈이라는 현실이 한없이 쓸쓸하다. 그의 꿈이 나의 꿈이 되고 함께 꿈을 꾸는 아름다운 세상. 내 꿈을 위해서 그의 꿈을 짓밟아야 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내 꿈을 위해서 그를 이겨야 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꿈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세상. 이런 마음이 단지 꿈으로만 그치지 않기를.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교육과정운영과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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