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고문(拷問)

입력 2011-12-30 10:57:05

16세기 영국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은 부정적 측면이 적지 않은 군주들이었다. 부녀 사이인 이들은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고문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거나 용인했다. 헨리 8세는 캐서린 왕비와 헤어지기 위해 이혼을 금지하는 가톨릭에 등을 돌리면서 국내의 반대파들에게 고문을 자행하도록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45년의 재위 기간 동안 영국이 두각을 나타내도록 이끌었지만 자신의 안위에 집착해 역시 고문을 허용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 리차드 톱클리프라는 고문 기술자가 악명을 떨친 것도 그 때문이다. 톱클리프를 유용하다고 여긴 재상 윌리엄 세실이 그의 집에 고문실을 설치할 수 있게 허락하자 톱클리프는 자신이 극도로 싫어한 가톨릭 신자 사냥에 열을 올렸다. 희생자들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는 온갖 고문 기술을 구사하면서 환희를 느꼈고 자신이 성고문을 가해 임신한 여자를 자신의 조수와 강제적으로 결혼하도록 했다. 다른 조수와 공모, 무고한 그의 아버지를 반역죄로 엮어 고문해 죽이고 유산을 나누기로 했으나 공모자가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하는 파렴치함까지 보였다. 그가 죽은 뒤 욕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의 조카는 수치를 피하기 위해 성을 바꿔야만 했다.('튜더스'' G.J. 마이어 지음)

야만과 잔혹성의 상징인 고문은 오랫동안 이어져 오다 현대에 들어 불법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조차 독재 체제의 고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칠레 피노체트 군사정권하에서 1만여 명의 고문 피해자가 발생했고 1970년대와 80년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도 고문을 통해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켰다. 3대 세습이 이어지고 있는 북한에서는 여전히 고문이 이뤄지고 있고 대표적 민주 국가인 미국에서도 이라크전 포로들에 대한 고문과 학대 논란이 빚어졌다.

우리나라도 고문의 어두운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혁당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30일 별세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도 고문의 피해자이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통하는 김 고문은 과거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파킨슨씨 병을 앓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야만의 채찍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한 삶을 살다 간 그에게 남은 이들은 빚진 심정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김지석 논설위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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