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쓰고 싶은 책이 있었다.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철저히 파고들고 싶었다. 나는 그 주제를 아주 실감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사회에서는 미혼율이 높아진다고들 법석이다. 서울 강남에 사는 30대 여성은 거의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미혼이며, 30대 남성의 미혼율도 10년 전보다 두 배로 뛰어서 열 명 가운데 네 명 정도가 미혼이라고 한다. 머지않아 1인 가구 수가 일본 수준으로 늘어나리라고도 전망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새로운 생활 스타일로 보기보다는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고아나 노인을 위한 강의뿐 아니라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 화목한 부부, 심지어는 좋은 부모 되기 같은 강의도 많다. 그러나 정작 늘어나고 있다는 독신 생활에 대해서는 일정한 생활로 가는 중간 형태쯤으로 여긴다. 당사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은 길어서 100살까지 산다고 해도 30, 40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미완성이며 임시적 상태로 간주하는 일은 잘못일 듯하다. 하루를 산다 해도 그것이 생활의 한 스타일임을 인지해야 할 것 같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갈하려던 나는, 준비를 하면서 내가 이런 책을 쓸 자격이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혼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혼자 산다는 것과 혼자라는 말이 서로 다른 의미임을 깨달은 까닭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히들 미혼은 혼자 사는 삶이며, 결혼은 혼자가 아닌 생활 형태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미혼이나 기혼이라는 말은 결혼 여부의 차이일 뿐, 혼자 사는 것, 혼자인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혼자일 수가 없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서로 얽혀 지내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베네딕토 수녀원은 식민지시대 북한 지역 원산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학교와 병원을 짓고, 예쁜 성당과 수도원을 오가며 한창 일해 나갈 때 해방이 되었다. 그러자 소련군이 들어와서 물건을 앗아갔다. 이어 공산정권이 서자, 외국인 수도자들을 함경도 옥사덕이라는 곳으로 집단 수용하고, 한국인 수도자들은 수도복을 벗기고 결혼해서 살라고 하며 해산시켰다. 북한에서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수도자들은 월남을 계획했다. 그러나 해산된 이후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고 또 한꺼번에 이동할 수가 없어서 연락이 닿는 대로 떠났다.
알퐁사 수녀는 한 교우를 통하여 서울로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그는 1950년 12월 5일 혼자서 길을 떠났다. 북한에서 태어나서 자란 그는 그저 남쪽을 향해 걸었다. 세상이 온통 눈으로 덮여 있어서 길과 물이 구분이 안 되어 물에 빠지기도 하고 가시밭에 들어가기도 했다. 인가를 발견하면 들어가 잘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눈 위에서 새워야 했다. 물론 공민증도 없고, 피란길이니 드러내놓고 남쪽으로 간다는 소리도 할 수 없었다. 그는 28일 동안 걸어 1'4후퇴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 서울에 도착했다. 그는 '우리 공동체 수녀들이 있는 곳으로 저를 데려다 주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는 혼자 있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한편,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에게는 언제나 누군가가 옆에 있다. 교수 생활 초기에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물론 병원에 들어갈 때는 혼자 실려가서 '보호자'가 사인을 하지 않았다고 응급실에 몇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입원했음을 알고는 서로 당번을 짜서 낮이면 여자 졸업생들이 병상을 지켜 주었고, 남학생들은 퇴근하는 길에 들러 그들을 집에 데려다 주곤 했다. 공동 병실이었는데 내 자리는 늘 미안하도록 시끄러웠다. 내 개인적 식구가 있었다면 그들이 그런 프로그램을 짜지는 않았을 것이다. 혼자 사는 나에게도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지 언제나 이웃은 있었다.
뒤집어 말하면, 사람은 누구와 같이 지내거나, 결혼을 해도, 각자가 독자적인 개체이며 서로는 혼자이다. 혼자인 사람이 타인을 만나는 것이다. 결혼으로 엮이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정적으로 만나든, 아니면 마음속으로만 만나든 간에, 그것은 타인을 만나는 여러 다른 스타일의 하나이다.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는 것은 주어진 환경과 자신의 선택일 뿐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혼자 살든 여러 명이 살든 홀로서기가 먼저 되어야 한다. 혼자 사는 일이 홀로서기가 아님은 물론이다. 홀로서기가 바로 되어야 가족의 존재를 올바로 느끼고 또 결코 가족과 다르지 않을 이웃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좀 더 진지하게 만나고 깨달았으면 한다.
김정숙/영남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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