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고 가꾸고 걸어온 1년…그 길에 희망을 새기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의 소설 '고향' 중에서)
옛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전엔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걷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사람의 발걸음이 뜸해지면서 길도 모습을 감추었다.
옛길과 숨바꼭질을 한 이유는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기 위해서였다. 고도성장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을 벗어나 이제는 한번쯤 자기 스스로를 살펴볼 때가 됐다. 뒤돌아보고 생각하는 삶을 옛길 위에서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옛길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옛길은 희망이다
옛길이라는 문화재는 밟아도 되고, 밟을수록 좋은 문화재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옛길은 여전히 생명을 유지한다.
옛길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아예 버려진 길도 있고, 어떤 길은 여전히 옛 정취를 간직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는 문경새재다.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영남 유생들의 한결같은 희망은 과거시험에 급제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유생들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갈 때 죽령과 추풍령을 넘기 싫어한 것은 죽령을 넘으면 '죽죽 미끄러지며',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굳이 문경새재를 넘고자 한 것은 문경(聞慶), 즉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라는 뜻 때문이었다.
하늘재는 2천 년 가까운 장구한 세월 속에서도 묻히지 않은 고갯길이다. 우리나라 길 중에서 아마 나이가 가장 많은 고갯길일 것이다.
다시 사람들이 찾으면서 생명을 얻는 옛길도 있다.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던 소백산 죽령은 영주시의 죽령옛길 복원 사업과 선현들의 발자취를 밟아보려는 방문객들의 호기심으로 옛 영화를 되찾고 있다. 죽령은 영남에서 충청도나 경기도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었지만 2001년 죽령터널이 뚫리면서 걷지 않는 길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경북의 옛길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예전 팔조령 고갯길은 넓은 돌을 깔고 틈새를 흙으로 메운 보기 드문 포장길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흔적은커녕 옛길조차 찾기가 힘들다.
창수령도 15년 전 고갯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면서 오솔길 대부분이 사라진 탓에 옛 정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봉화 노루재는 경북 북부 내륙과 동해안, 강원도를 잇는 고갯길이다. 노루재도 36번 국도에 터널이 뚫리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가지 않는 길이 됐다. 청송 노귀재는 터널공사로 역사 속에 묻힐 전망이다. 청송 삼자현 고갯길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고갯길 아래로 터널 건설이 내년부터 추진되기 때문이다.
목통령은 김천에서 가장 오지에 속하는 증산면에서 거창과 합천을 넘나들던 길이다. 지금은 잘 포장된 도로 덕분에 자동차로 가야산 자락을 휘돌아 합천'거창을 찾아가지만 옛날에는 지름길인 목통령이 유일한 통로였다. 하지만 목통령은 지금은 길조차 사라져버렸다.
반면 새로 만들어지는 길도 있다. '외씨 버선길'은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강원도 영월 4개 군의 마을길과 산길을 이은 길이다.
◆찾고, 가꾸고, 걷자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길이다.
홍수로 길이 끊어지거나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면 실생활에서 겪는 불편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심지어 먹을 것이 부족해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길은 우리가 생활하고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활동을 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유통시키는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회나 국가가 발전할수록 교통로의 정비가 더 활발해졌다.
제주도 올레길이 뜬 뒤 전국적으로 길 만들기와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굳이 제주의 올레길과 지리산의 둘레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 경북 곳곳에도 아름다운 길이 많기 때문이다.
옛길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길을 찾고, 가꾸고, 걸어야 한다. 잊히고 묻힌 옛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길을 찾은 다음 할 일은 무엇보다 그 길을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여겨서 가꾸고, 그 길을 걷는 것이다.
경북의 옛길이 길로 다듬어지기 위해서는 과제도 많다. 경북지역에서는 옛길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탓이다. 대부분의 옛길 자리는 인도조차 없이 국도나 지방도가 차지하고 있다.
경북의 옛길을 되살리면 지역 문화를 풍성하게 하고 지역주민의 삶에 정체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 경북의 옛길을 다시 찾고 온전한 길로 다듬을 수 있는 기회는 우리 모두가 만들 수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길이라도 걷는 사람이 없어지면 길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옛길을 살리는 지름길은 옛길을 찾고, 가꾸고, 걷는 것이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헌법재판관, 왜 상의도 없이" 국무회의 반발에…눈시울 붉힌 최상목
임영웅 "고심 끝 콘서트 진행"…김장훈·이승철·조용필, 공연 취소
음모설·가짜뉴스, 野 '펌프질'…朴·尹 탄핵 공통·차이점은?
尹 기습 메시지에…이준석 "조기 대선 못 나가도 되니 즉각 하야하라"
이재명 신년사 "절망의 늪에 빠진 국민 삶…함께하겠다"